비례대표 부정 선거와 종북 논란을 빚었던 이석기ㆍ김재연 의원의 통합진보당 제명(출당)이 무산되면서 3달 넘게 끌어온 진보당의 개혁 작업에 제동이 걸렸다.
26일 의원총회에서 두 의원에 대한 제명안이 부결되면서 강기갑 당대표ㆍ심상정 원내대표 체제의 당 혁신 작업이 동력을 잃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중립 성향의 김제남 의원이 이번 표결에서 사실상 구당권파의 손을 들어주면서 강기갑 당대표의 개혁 작업도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통합진보당은 물론 진보정당의 정치세력화에 큰 타격을 줬던 이번 사태는 내부 관계자의 폭로에서 비롯됐다. 4월 총선 직후 이청호 통합진보당 부산 금정구 시의원이 비례대표 경선 과정의 문제점을 폭로했고, 이 의원의 주장처럼 부정ㆍ부실 경선이 광범위하게 이뤄진 정황이 속속 드러나면서 사태는 일파만파로 번졌다.
구당권파의 핵심 인물로 알려진 이석기 의원이 입당 석 달 만에 당비인 3만원만 내고 국회의원이 된 것과 관련해 당내외에서 비판과 의혹이 잇따랐다. 당내 최대 계파인 경기동부연합을 중심으로 한 특정 세력이 비례대표 투표 과정에 개입해 이 의원이 당선되도록 만들었다는 주장이었다.
실제로 당의 진상보고서를 통해 총체적인 부정ㆍ부실이 확인됐다. 그러나 4ㆍ11 총선에서 진보정당을 지지하고 표를 줬던 사람들에게 더 큰 충격을 준 것은 부정 선거보다 이석기ㆍ김재연 의원이 속해 있던 구당권파가 보여준 정치적 행태였다. 이들이 당의 진상보고서 자체를 무시하고 조직적으로 당원을 동원하거나 폭력사태를 방기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자 여론과 당원들이 이들에게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진보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투명성과 윤리성, 절차적 정당성을 무시하는 구당권파의 전횡에 대해 여론은 날로 악화됐고 당내 힘겨루기에서도 불리한 국면이 전개됐다.
결국 구당권파의 핵심인 경기동부연합은 울산연합 등 다른 세력과의 연대를 통해 당권 회복을 시도했다. 그러나 구당권파는 원내대표 선거와 당대표 선거에서 연이어 패배하면서 당내에서 비주류로 밀려났다.
그리고 신당권파는 이날 이석기ㆍ김재연 의원에 대한 제명안 처리를 통해 본격적인 당 개혁을 시도하려고 했지만 구당권파의 세력에 밀려 첫 단추조차 끼우지 못한 셈이다.
제명안 부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김제남 의원으로 알려졌다. 김 의원은 이번 사태를 두고 줄곧 당심을 보고 판단하겠다는 뜻을 밝혀 두 의원의 제명안은 가결이 유력했다. 그러나 이날 김 의원은 투표소에 들어갔지만 투표를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 의원의 기권에는 구당권파와의 인연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당내에서는 김 의원의 국회 입성에 구당권파의 역할이 컸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23일 두 의원의 제명을 위한 의원총회가 열렸을 때도 김 의원이 구당권파의 입장을 옹호하면서 결국 의총을 연기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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