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압없었다”… “이사회를 중심으로 노력해달라” 당부
“그동안 마음을 비웠다. 사의표명 배경에 대해 외압이나 외풍은 없었다" 지난 15일 정준양 포스코 회장이 사의를 표명하면서 했던 말이다. 이사회 의장에게도 “거취를 둘러싼 불필요한 오해와 소문이 회사 이미지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이사회를 중심으로 노력해 달라"고 당부까지 했다. 이는 명예로운 퇴진을 하고 싶다는 정 회장의 심정이 물씬 묻어나는 대목이다.
하지만 관련 기업은 정 회장의 사의 표명을 액면 그대로만 보지 않는 눈치다. 포스코에 대한 보이지 않는 권력 개입이 있었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철강업계 한 관계자는 “포스코를 여전히 정부 기업으로 생각하는 새 정권이나 정치권이 결국 정 회장의 사의 표명을 부추겼다"며 “정부 측 지분이라곤 국민연금이 갖고 있는 6%의 지분이 전부인데 왜 포스코 회장 자리를 좌지우지하는지 모르겠다"고 탄식했다.
포스코는 지난 2000년 정부가 보유 지분을 팔면서 완전 민영화됐다. 외국인들이 쥐고 있는 포스코 지분이 51%에 달할 정도로 포스코는 이제 공기업이 아닌 글로벌 민간기업 중 하나로 꼽힌다. 사실 포스코 회장 자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영욕을 거듭했다. 새 회장 자리에 오르는 인사는 영광이겠지만 물러나는 회장이나 포스코 조직엔 수치스러운 사건이었다.
이런 영욕의 첫 주자는 김만제 전 포스코 회장이 꼽힌다. 1994년 3월 포스코 수장 자리에 올랐지만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 사퇴했다. 유상부 전 회장의 낙마는 더욱 부끄러운 일이다. 초대 민영화 CEO로 불렸던 유 전 회장은 김대중 정부 인사란 점이 쉴 새 없이 거론되며 노무현 정부 출범과 동시에 회장직에서 내려왔다. 더욱이 유 전 회장은 재임 중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3남인 홍걸 씨의 요청을 받고 타이거풀스 주식을 고가 매입했다는 혐의로 검찰 기소까지 됐다. 그나마 이구택 전 회장에겐 외풍이 약했다는 얘기도 있다.
이 회장은 `포스코 공채 출신 1호 회장`이란 타이틀을 등에 업고 연임까지 성공하며 포스코 내에서 막강 권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이 전 회장에게도 이명박 정부 출범과 동시에 하차설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2008년 말 세무조사를 무마하려고 로비를 했다는 루머 때문에 검찰 수사를 받고 임기를 1년2개월 남기고 사임했다. 선배들의 영욕의 순간을 지켜봐왔던 정 회장에겐 올 한 해가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는 게 정 회장 측근들의 전언이다.
때 아닌 세무조사도 받았다. 특별한 범법 행위도 없었고 글로벌 철강 경기 불황에도 불구하고 세계 철강사 중 최고의 영업이익률을 낼 정도로 선방했던 정 회장이기에 이번 사의 표명은 결코 자신이 원한 게 아니었다는 얘기다. 무엇보다도 정 회장은 지난해 3월 주주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연임이 결정됐다.
준수한 실적뿐만 아니라 정 회장이 진두지휘한 인수ㆍ합병도 시너지를 발휘하고 있다는 점이 연임 결정의 배경으로 꼽혔다. 포스코 관계자는 "정 회장 재임 중에는 글로벌 철강 전문 분석기관인 WSD로부터 4년 연속, 6회 연속 세계 1위 철강사로 꼽혔다"며 정회장의 사퇴에 대한 아쉬운 한숨을 내 뱉었다. 한편 차기 회장의 물망에 오른 인사들로는 윤석만 전 포스코건설 회장, 대우인터내셔널 이동희 부회장, 김종인 대한발전전략연구원장 등의 인사가 오르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