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남성이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사망한 사건으로 촉발된 시위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군을 동원해서라도 진압하겠다는 강경 발언을 이어가자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이 공개적으로 부정적인 입장을 내놨다.
에스퍼 장관은 3일(현지시간) 브리핑을 자청해 "법 집행에 군 병력을 동원하는 선택지는 마지막 수단으로만, 가장 시급하고 심각한 상황에서만 사용돼야 한다”면서 “우리는 지금 그런 상황에 있지 않다. 나는 폭동진압법 발동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군 동원은 마지막 수단이며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라고 선을 그은 것이다. 이같은 에스퍼 장관의 발언은 그간 그가 트럼프 대통령과의 마찰을 피하는 '충성파' 라인으로 분류돼 온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이다.
그는 이날 브리핑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교회 방문 이벤트'에서 거리를 두는 발언도 했다. 교회 방문에 동행하게 될 것은 알았지만, 사진촬영이 이뤄지는지는 몰랐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일 백악관 앞에 모인 시위대에게 최루탄을 쏴 해산시키고 백악관 앞 교회를 방문, 에스퍼 장관 등 핵심 참모들과 '인증샷'을 찍었다 여론을 비난을 샀다.
에스퍼 장관은 백인 경찰의 무릎에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목숨을 잃은 사건에 대해 "끔찍한 범죄"라면서 "인종주의는 미국에 실재하고 우리는 이를 인정하고 대응하고 뿌리뽑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 시위대를 폭도로 규정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결이 다른 발언을 하기도 했다.
항명과 다름없는 에스퍼 장관의 행보는 트럼프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린 것으로 전해지며 미 언론에서는 경질 가능성까지 제기하고 있다.
CNN방송은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다고 해도 에스퍼 장관이 직을 유지할지 의문이 제기돼 왔는데 오늘 발언으로 낙마 시점이 빨라질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사석에서 에스퍼 장관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비롯한 핵심 참모들도 에스퍼 장관이 장악력이 약하고 트럼프 대통령을 확실히 편들지 않고 있다는 불만을 갖고 있는 상황이었다고 CNN은 전했다.
미국에서는 '플로이드 사망 사건'으로 인종차별과 공권력 남용에 반대하는 시위가 9일째 이어지고 있다. 대부분의 시위는 평화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나 심야 약탈과 폭력 사건도 이어져 워싱턴DC와 뉴욕을 비롯한 지역에는 통금령이 내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