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과 저녁으로 쌀쌀한 찬바람이 가을이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왔음을 알리는 듯 하다. 그리고 가을과 함께 주변에 알록달록 꽃들도 이제 만개할 채비를 서두르는 모양새다. 추석도 코앞이다. 넓은 들판 길가에 흐드러지게 핀 코스모스가 있는 고향 생각이 깊어지는 계절이 왔다.
# 향수의 역 황등역
‘코스모스 피어있는 정든 고향역’ 국민애창곡 나훈아의 ‘고향역’ 첫 가사이다.
먼 훗날 금의환향을 꿈꾸며 고향을 떠나 도시로 이주한 이들의 가슴을 구슬프게 적신 고향역의 배경은 다름이 아닌 황등역이다.
전북 순창에서 태어난 고향역의 작곡가 임종수 선생님은 학창시절 삼기면에 있는 형님 집에서 산길을 넘어 황등역으로 가 통학 열차를 타고 다녔다. 삼기에서 황등역까지 20리 길을 기차 시간에 맞추기 위해 쉼 없이 뛰다시피 했던 그때 그 시절, 기찻길 옆에 핀 코스모스를 보면서 고향의 어머니 생각에 많이 울었던 추억을 되살려 지은 명곡이 바로 ‘고향역’이다.
황등역은 한 때 여객, 화물 취급을 모두 중지한 무인역이었으나, 조차장 및 화물 취급 기능 일부를 넘겨받아 2001년 보통역으로 환원되었다.
세월이 흘러 예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지만, 가을이 되면 역 주변으로 형형색색의 코스모스가 흐드러지 피어 가을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잠시마나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다.
# 전국 으뜸의 화강석
익산시 황등의 최고의 자랑거리는 바로 전국에서 가장 질이 좋은 화강암 생산지라는 것이다. 익산은 예전부터 단단하고 이물질과 철분의 함유량이 적어 부식이 잘 되 않는 질 좋은 화강석이 많이 나오기로 명성이 높았다. 함열읍과 낭산면 그리고 황등면에서 많은 화강석이 생산되는데 특히 황등석이 가장 유명하였다. 황등면은 돌로 먹고 산다는 말이, 황등석의 유명세를 잘 표현한다고 할 수 있다. 석재 산업이 한창일 적에는 온 동네가 하루 종일 돌을 깎는 기계소리로 가득 찼었다.
국회의사당과 독립기념관 그리고 청와대 영빈관 건축에 황등석이 사용되었다. 또, (古)노무현 前대통령의 묘역에도 황등석이 사용된 것은 그 품질으 우수성을 인정받았다는 증거인 것이다.
이제는 매장향의 고갈로 예전만큼 많은 석재를 생산하지 않아, 하루 종일 온 동네에 울려퍼지던 우렁찬 기계소리도 예전만 못 하지만, 여전히 황등에는 화강암 가공을 위한 석재공장이 많이 남아있다.
# 황등 맛, 전국을 사로잡다.
돌로 먹고 산다는 황등면, 그곳에는 식도락가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진짜 맛이 있다. 바로 황등비빔밥이다. 황등비빔밥은 전주, 진주비밤밥과 더불어 전국 3대 비빔밥으로 손꼽힌다. 흰 쌀밥위에 각종 나물과 고명이 얹혀 나오는 비빔밥과 달리 기본양념에 콩나물과 시금치, 쑥갓 등을 넣고 뜨거운 불에 한 번 비빈 후 그 위에 소고기 육회를 얹히는 것이 특징이다. 소고기 육회와 비빔밥을 한 번 더 비비면 밥의 온기로 살짝 익은 소고기의 육즙과 비밤밥 특유의 고소함을 함께 맛 볼 수 있다.
“엿장수 타령” 소개 된 황등 용산면의 찹쌀엿은 토질이 좋은 익산에서 재배한 찹쌀을 넣고 만들어 그 향과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조선시대 전통방식 그대로 만드는 용산 찹쌀엿은 이에 잘 붙지 않으며, 임금님의 진상품으로 더욱 유명하다. 현재는 소규모로 만들어 판매가 되고 있다.
또, 황등은 1900년대 초부터 맛 좋은 물고구마 생산지로도 유명하다. 질 좋은 황토에서 자란 노락색 황등 물고구마는 잘 익은 김치와 곁들여 먹으면 그 맛이 참으로 좋았던 최고의 간식거리였다. 추운 겨울 가을에 수확해 놓은 고구마를 쪄, 물김치(동치미)나 김치와 같이 먹으면 그 맛이 참으로 일품이었다. 지금도 고구마 수확시기가 오면 그 맛을 잊지 못 하시는 분들이 황등고구마를 많이 찾고 있다.
이번 추석에 온 가족들이 모여 추석음식과 더불어 밤참으로 고구마를 쪄 먹으며, 아련한 지난 날 모두의 추억을 곱씹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