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시오프닝 : 2008년 12월 11일 목요일 오후 5시-8시
중국 현대미술은 그 실체가 무엇인지도 파악하기 어려운 짧은 시간동안, 어느 덧 거대한 물결이 되어 우리 옆에 바짝 다가와 서 있다. 해외 유수의 미술관은 물론 한국의 여기 저기에서도 중국현대미술의 흐름을 보여주려는 전시가 줄을 잇고, 베이징에도 미술전문 구역이 형성되었다. 최근에는 해외 옥션에서 중국 어느 작가의 작품이 최고가에 낙찰되었다는 소식이 화제다.
하지만 이러한 급성장의 이면에는 보다 먼저 중국현대미술을 소개하려는 선점권 쟁탈 경쟁이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은 중국의 국가적 향방 뿐 아니라 중국현대미술의 미래를 점치는 하나의 기준과도 같았다. ‘그 (올림픽) 때까지는 지속적으로 상승곡선을 탈 것이다’ 라는 기대가 작가에게도, 갤러리에도, 그리고 컬렉터 사이에서도 있었다.
그 올림픽이 끝나고 난 지금, 중국 현대미술은 검증과 자생을 거쳐야 하는 숙제를 안고있다. 저 멀리 거장의 반열에 오른 몇몇 스타 작가들을 제외하고, 중국사회의 정치문화적 변화에 촛점을 맞췄던 작가들은 국제화의 장대를 어떻게든 넘어야 할 것이다. 개성적인 이미지를 깊게 각인시키며 이목을 끌었던 작가들은 그것을 넘어 멀리 뛰어야 할 것이다. 올림픽이 끝난 지금, 비로소 중국 현대 미술은 진짜 게임이 시작된 것이다.
일찌기 ‘Made in Asia’ 전시 등을 통해 중국현대미술을 지속적으로 소개해왔던 오페라갤러리에서는 차세대 유망주들을 선보이는 Who’s next in China 전시회를 기획하였다. 본 전시에 소개될 작가들은 소위 ‘중국현대미술’이라 이름붙여진 경향의 흐름을 계승하면서도 작가만의 독창성과 시대적인 당대성을 담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이들이다.
장 웨이, 친 펑링, 왕예한은 이미 스타가 된 중국미술의 주류작가들과 동일한 1950년대 출생 세대이지만, 과감하게 부조 릴리프를 이용한 팝 적인 작품을 선보인다든지 (장 웨이), 튜브 물감을 그대로 짜서 만화와 같은 이미지로 화면을 구성한다든지 (친 펑링), 캐나다에서 그래픽 공부한 것을 바탕으로 모던한 추상화면을 그려내는 등 (왕예한), 그간 보아왔던 중국현대미술가들과는 차별화된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더 이상 변화하는 중국사회의 격변이라든지, 이념의 변화 등 중국 작가들이 보여줄법한 이미지라고 짐작되는 스타일을 반복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제 ‘현대’ 예술가로서 이 시대의 문제를 논하며, 중국의 모습은 특별한 이슈가 아니라 그들이 속한 환경의 일부로 제시될 뿐이다.
오토바이를 타는 도시인의 이미지를 회화적으로 표현하는 리아오 전우, 전통 중국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내는 류 다밍, 전통 중국 포스터의 이미지를 우스꽝스러운 돼지 이미지와 배치시키는 것이 특징인 쑨 광화와 같은 60년대생 작가들은 스촨, 길림 등 지방미술의 특징을 살린 독자적인 예술언어를 확립해나간다. 하지만 하나의 아이콘으로 고착되거나 도식화된 긴장감을 추구하기 보다는 회화적이고 유머러스한 감성을 보여준다. 이들은 비판적 관점보다는 한결 자유로워진 입장에서 소재를 선택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특히 메인작가로 선정된 쑤에 쏭은 1965년 안휘 출신으로, 베이징에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다. 작품의 이미지는 사진, 잡지, 신문 등의 인쇄물을 태워 꼴라쥬한 것이다. 비어있는 인물의 실루엣은 구체적인 형상이 없이도 그것이 마오임을 짐작케 한다. 전통적인 이미지들이 현대의 일상과 뒤섞여있는 꼴라쥬는, 진지하다고도 혹은 가볍다고도 말할 수 없는 모순적인 상황을 제시한다. 하지만 그의 작업은 과거에 대한 고발 혹은 비판이라기 보다는, 작가 자신도 마찬가지이지만 중국 격변기의 상황을 경험하거나 목도하지 않은 관객들의 뇌리에 이미 하나의 문화로 구축되어 버린 중국에 대한 이미지는 무엇인지를 되묻고 있는 것이다.
시옹 친, 리 티엔빙, 우 팅화, 왕 시아오번 등 일찍부터 서구에서 생활을 하거나 적어도 그 영향권 아래에서 활동을 시작한 70년대 이후 출생 작가들은 미키마우스 등 개방화된 이래 중국에 유입된 아이콘들을 과감히 사용하며, 탈정체화된 특성을 보여준다. 중국작가의 작품임을 대번에 알 수 있었던 이전 세대의 작품과 달리 이들의 작품은 일본이나 한국 작가들의 작품과 유사해보이기도 하여, 중국의 젊은 작가들이기라기 보다는 ‘아시아의’ 나아가서는 ‘세계의 차세대 주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스 리루, 왕 치, 리 위두안 등 80년대에 출생한 젊은 세대들은 중국현대미술의 부흥이라는 조명 덕분에 일찍부터 세계의 이목을 받은 혜택받은 세대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이를 인식하기라도 한 듯 중국미술의 특징이라 할만한 것에 연연하는 듯 하면서도, 중국현대미술의 고정관념을 타파하려는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오페라갤러리 서울은 이번 전시회를 통해 그동안 잘 알려져있지 않았던 중국작가들을 대거 소개함으로써 미래의 스타를 꿈꾸고 있는 중국 현대미술의 다양한 면면을 보여주고자 한다. 파악하기 어려운 하나의 큰 덩어리처럼 보여졌던 중국현대미술의 주름 속에 숨겨져있었던 흐름이 밖으로 나올 때, 이제 누구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보낼지는 관람자, 당신의 몫이다.
▶작품사진:친 펑링(Qin Fengling)- Heaven & Earth part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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