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서울 광화문광장과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등 도심 일대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에 찬성하는 집회와 반대하는 친박(親朴) 성향 보수 단체들의 집회가 나란히 열렸다. 경찰은 광화문광장과 세종문화회관 사이에 경찰 버스로 긴 차벽(車壁)을 설치해 양측을 분리시켰다. 양쪽 시위대도 평화 시위 기조를 이어가면서 물리적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지난 17일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린 8차 촛불 집회에는 경찰 추산 6만명(주최 측 추산 65만명)이 참가했다. 주최 측인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지난 1~7차 집회에서 청와대 방향 행진에 집중했던 것과 달리 이번엔 헌법재판소 청사와 삼청동 총리 공관 쪽 행진에 초점을 맞췄다. 탄핵 심판을 맡은 헌법재판소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황교안 국무총리에게 '촛불 민심'을 전달한다는 것이다. 법원은 청와대 방향 행진과 마찬가지로 헌재와 총리공관도 100m 앞 지점까지 시위대 행진을 허용했다.
이날 오후 5시부터 시작된 광화문 광장 본집회에서는 자유 발언과 촛불 소등(消燈) 행사 등이 이어졌지만 3~7차 집회 같은 유명 가수 공연은 없었다. 일부 시위대는 광화문광장에 노란색 우체통을 설치하고 '헌법재판관에게 국민 엽서 보내기' 운동을 펼쳤다. 경기 고양시에서 온 조수희(28)씨는 "헌재에서 탄핵 인용 결정을 최대한 빨리 내려달라는 마음을 담아 엽서를 써 넣었다"고 말했다.
오후 7시쯤 총리공관 앞 100m 지점인 삼청동주민센터까지 진출한 시위대는 세월호 희생자들을 상징하는 구명조끼 304벌을 입고 '(황교안) 총리도 공범이다'는 구호를 외쳤다. 헌재 앞 100m까지 간 시위대는 '탄핵 인용' 구호를 외치고 5초간 함성을 지르면서 1시간가량 집회를 열었다. 시위대는 오후 9시쯤 해산했다.
경찰은 이날 서울을 포함, 전국에서 총 7만7000명(주최 측 추산 77만명)이 촛불 집회에 참가한 것으로 추산했다. 집시법 위반으로 인한 경찰 연행자나 부상자는 없었다.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등 50여 개 보수 단체가 설립한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는 지난 17일 오전 11시부터 서울 광화문광장과 헌법재판소 등에서 탄핵 반대 집회를 열었다. 이날 집회에는 전국에서 상경(上京)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가하면서 경찰 추산 3만3000명(주최 측 추산 100만명)이 모였다.
주최 측은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 탄원서 서명대를 설치하고 태극기를 나눠 줬다. '촛불'에 맞서 '태극기'를 상징으로 내세운 것이다. 대구에서 올라온 신정희(51)씨는 "성형시술은 사생활인데 그걸 문제 삼는 건 치졸하다"며 "헌재에서 촛불로만 판단하지 말고 우리 같은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고 올바르게 재판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집회 현장엔 20~30대 참가자도 많이 눈에 띄었다.
탄기국은 헌재 앞 100m 지점인 안국역에서 집회를 시작한 뒤 청와대 동남쪽 100m 지점인 세움아트스페이스까지 행진해 태극기와 장미꽃을 놓고 오는 퍼포먼스를 했다. 장미는 대통령을 응원하는 의미라고 주최 측은 설명했다. 시위대는 행진하며 애국가와 '100만송이 장미' '사랑으로' 같은 가요를 불렀다. 퍼포먼스를 마친 시위대는 안국역으로 돌아와 정리 집회를 하면서 '탄핵 기각' 등의 구호를 외친 뒤 오후 2시쯤 자진 해산했다. 주최 측은 집회 전 박사모 홈페이지에 "어떤 경우에도 무저항·비폭력 집회를 해서 보수의 품격을 보여주자"고 강조했고, 집회 현장에서도 '질서'를 구호로 외쳤다. 이날 보수 단체 집회에서도 경찰 연행자나 부상자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