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규슈지방 해안가의 쓰나미 장면이 텔레비전에 보도됐을 때, 아마도 놀라지 않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최근 한국방문은 쓰나미를 연상케 했다. 대선출마 시사발언이 휩쓸고 간 자리는 황폐, 그 자체이다.
30일자 중앙일보의 대선 후보 관련 지지여론조사 결과는 반기문이 28.3%로 최고 수위를 달렸다. 정계를 강타한 '반기문 쓰나미'였다. 문재인-안철수-박원순-오세훈-김무성 등이 형편없는 하위 순위로 밀렸다. 중앙일보는 30일자에서 “대선주자 누구 지지하나…중앙일보 긴급 여론조사” 제하의 기사를 게재했다. 중앙일보 조사연구팀이 5월 27~28일까지 조사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한 것. 이 조사결과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28.4%, 문재인 전 의원 16.2%,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11.9%, 박원순 서울시장 7.2%,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 4.2%로 나왔다. 여당의 대표를 지냈던 김무성의 대선후보 지지도도 추풍낙엽 신세였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30일 이한했다. 이날 그를 향한 비판과 조언이 쏟아졌다.
30일 열린 더불어민주당 제38차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는 반 총장을 비난하는 말이 나왔다. 이종걸 비대위원은 이 자리에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명예로운 임기 종료를 앞둔 시기이다. 임기 중에 세계 평화를 위한 중대한 업무를 다 정리하고 명예로운 직을 내려놓을 준비를 해야 될 때인데, 방한을 해서 통일문제도 아니고 남북 평화에 관한 문제도 아닌 어찌 보면 마치 대통령 후보로서 행보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국내외 언론의 지적이 있었다. 사실 이것은 유엔 규율에도 어긋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은 30일 원내대변인 공식 논평에서 “반기문 총장이 새로운 시대와 시간을 맞이하는 다음 대선에 부합하는 분인지 좀 더 검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더민주 정세균 의원은 이날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를 통해 노무현 저권 때 함께 장관을 지낼 때의 반총장(당시 외무부 장관)을 떠올리며 "대통령은 국가를 위해 목숨도 바칠 자세가 돼 있어야 하는데, 그런 걸 느끼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국민의당 장정숙 원내대변인은 30일 발표한 “성공하는 외교관으로 마무리 잘하길” 제하의 논평에서 “성공하는 외교관으로 마무리 잘하길!”이라고 핀잔했다. 장 원내 대변인은 “UN사무총장에 선출되었던 반기문 총장에 대해 국민도 국제사회도 기대가 컸다. 국민들은 최초의 아시아 사무총장에 선출되자 기뻐했고, 박수를 보냈다. 유엔본부에서 업적과 성과를 남기는 코리안 외교관으로 빛나기를 축원했다. 임기가 이제 7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 반 총장은 성공한 외교관으로서 또 중립적이어야 할 국제기구의 수장으로서 유종의 미를 거두기 바란다. 세계인들과 국민들은 그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한 세계인들과 대한민국 국민들의 반 총장에 대한 여망을 스스로 잘 아실 것이라 믿는다”면서 “행여 치우친 자세로 권력을 탐하는 것으로 보이거나 본연의 의무를 방기한다면 국민도 국제사회도 지탄하고 말 것이다. 부디 사무총장 직분과 의무에 충실해주실 것”을 고언했다.
반기문은 30일 유엔본부가 있는 미국 뉴욕 맨해튼으로 돌아갔다. 그는 30일 경주에서 개막된 UN NGO 컨퍼런스에 참석 “정치적인 행보나 이런 거와는 전혀 무관하게 오로지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국제적인 행사에 참여하고 주관하기 위해 온 것”이라고 강조하고 “고국에서 열리는 UN 행사를 위해 방한했을 뿐인데 대선 행보로 비쳐져 당혹스럽다며 남은 임기를 성실히 수행하겠다”고 밝혔다.
반기문은 한국을 떠나면서 “대선 행보로 비쳐져 당혹스럽다”는 말을 남겼다. 그 스스로 대선 출마 전초전처럼 대권 도전을 시사하는 발언을 해놓고 떠날 때는 그 꼬리를 감추다시피 했다. 그렇다면 반기문 쓰나미는 과연 누가 만들었다는 말인가?
한국 방문 며칠 만에 대선주자 지지도 여론조사에서 1위를 하는 촌극이 연출됐다. 이같은 '반기문 쓰나미'의 근본원인은 한국 정치나 의회권력의 허약성이었다. 행정부 수장인 박근혜 대통령의 의회권력 흔들기도 그 한 요인으로 분석된다.
반기문이 한국을 떠나기 전 남긴 방한 마지막 발언을 곱씹어 본다. “고국에서 열리는 UN 행사를 위해 방한했을 뿐인데 대선 행보로 비쳐져 당혹스럽다며 남은 임기를 성실히 수행하겠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