裸體(나체)
아무리 안 그런 척(?) 해도 본능적으로 눈이 먼저 돌아갔다. 맹세하건데 이건 정말이다. 내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동작이었다. 물론, 이런 말을 쉽게 믿어줄 남성이 드물겠지만, 그렇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우연히 어느 신문을 보는데 [나체의 역사]라는 책과 10여명의 여자 나체사진이 실린 기사를 보고 눈길을 어디에다 두면 좋을지 스스로 민망했다. 아직은 여자의 몸을 성적인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반증인줄도 모르겠다.
물론, 내심은 그렇지 않은데, 이것을 확증할 방법이 없으니 나도 미치고 환장하겠다. 솔직히 여자의 몸은 신기하고 아름답다. 아무리 백번 양보해도 여자의 벗은 몸처럼 남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도 드물지 싶다.
아니, 몸 자체가 우리에게 주는 혜택 또한 손꼽기 힘들 정도로 많다. 도파민과 엔돌핀을 생성시켜 사람을 건강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여전히 누드 즉 나체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것 또한 사실이다. 나체(裸體)라는 말만 들먹여도 변태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하긴 에로티시즘의 대가였던 '구스타프클림트' 제자 '에곤실레'는 말할 것도 없겠다. 그는 미소녀의 알몸만 그리다가 결국 체포까지 됐던 인물이다. 아마 말은 안 해서 그렇지, 남자들의 머릿속에는 수 없이 많은 여성들이 알몸으로 휘젓고 돌아다닐 것이다. 그렇지 않다고? 그렇다면 그는 사람이 아니던지 비정상이던지 둘 중의 하나일 테다.
그렇다면 누드(nude) 즉 나체라는 한자는 어떻게 구성됐는지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되지 싶다. 나(裸)는 옷을 벗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옷 의(衣) 자 변에 열매 과(果) 자로 구성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과일이 성숙해 떨어질 때쯤 되면 과일 나무는 모두 옷을 벗게 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늦가을 감나무를 보면 충분히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모든 잎들이 다 떨어지고 나면 과일은 그야말로 나목이 되는 셈이다. 간혹 숨김없이 뭔가를 낱낱이 들어내는 것을 가리켜 적나라(赤裸裸)하다고 표현하는데 아주 노골적인 말이다. 완전히 홀라당 옷을 벗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사람 몸은 붉은 색이다. 그래서 적(赤)자를 붙여 그런 표현을 사용했던 것이다.
하지만 벗은 몸은 결코 부끄러운 게 아니다. 다만, 부끄럽게 생각하는 그 태도가 오히려 부끄러울 뿐이다. 생각해보라. 태초에 하느님은 남녀를 빚어 발가벗겨 돌아다니게 만들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렇다고 그 당시처럼 벗으라는 말은 아니다. 때때로 감춰둔 몸 보다 드러낸 몸이 정말 예술적일 때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다.
오히려 몸을 꼼꼼 감추기만 하는 그 태도는 옳지 못하다. 건강한 몸은 스스로를 드러내도 결코 창피한줄 모르는 법이다. 연예인처럼 되려고 자기 몸에 함부로 칼을 대는 그것이야말로 가장 부끄러운 짓인지 모른다. 모조품의 누드가 아니라 원시적인 건강성을 가지고 있는 몸이 그리운 시절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나체(裸體), 얼마나 아름답고 건강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