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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살려구요~
  • 김재학
  • 등록 2012-11-23 09: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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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道然요 박종현 도공 (47)

"도연

▲도연 선생


‘바람처럼 그물에 걸리지 말고’라는 구절을 떠 올리게 하는 사람. 사람들은 그를 박도공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내가 그를 부르는 호칭은 그냥 ‘종현 오빠’다. 채 이십호도 안 되는 작은 산골마을에서 보낸 유년의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 내가 박 도공을 ‘종현 오빠’라고 부를 수 있는 가장 유일한 밑천이다. ‘바람처럼 그물에 걸리지 말고’라는 말은 언젠가부터 내 머릿속에 떠다니는 단어다. 언제쯤 어느 책에서 읽었는지 정확한 기억도 없다. 그래서 내친김에 인터넷 검색창에 도움을 요청했다.

"장작불을

▲장작불을 피우는 자연 가마


바람처럼 그물에 걸리지 말고
연꽃처럼 진흙에 물들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 걸어가라

출처가 ‘숫타니파타’란다. ‘바람처럼 그물에 걸리지 말고/ 연꽃처럼 진흙에 물들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 걸어가라’ 땅바닥에서 말라가는 고구마 줄기를 무심코 끌어당겼더니 잘 여물은 고구마가 주렁주렁 딸려 나오는 느낌이다. ‘연꽃처럼 진흙에 물들지 말고’도 좋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 걸어가라는 말도 좋고. 내가 평소에 좋아하는 구절들이다.

더불어 내 이야기의 주인공 박 도공의 이미지와도 너무 잘 맞아 떨어지는 구절이다. 내 머릿속에 박힌 박 도공은 산비탈 바랭이 밭에서 시들어가는 고구마 줄기처럼 땅속뿌리에 튼튼한 고구마를 주렁주렁 매단 사람이다.

내 어린 시절 추억을 공유하고 있는 박 도공은 참 재미있는 사람이다. 어느 날 갑자기 고향에 나타난 그의 모습은 재색 개량 한복에 긴 머리를 뒤로 질끈 동여 멘 모습이었다. 행색도 행색인데 거기다 다리를 찢거나 물구나무를 서는 등. 이상한 행동들을 선 보였다. 또 자기가 구운 작은 생활 자기들을 챙겨 와서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주기까지.

평생 벼농사 고추농사 밖에 모르고 살아온 고향 사람들의 눈에 박 도공의 행동들이 정상적으로 보였을 리가 만무하다. 뭔가 분명 나사가 하나 풀렸다는 소문을 낳게 했던 행동들임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나는 박 도공의 소식을 전해 듣고부터 내내 그의 지난 삶과 현재의 삶이 궁금했다.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살고 있는 것일까?

나의 이런 궁금증을 해갈시켜준 또 하나의 사건은 추석 명절에 일어났다. 마을회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이장님의 목소리.

“귀성객 여러분! 지금부터 제 얘기 잘 들으셔요. 지금 마을 회관 앞에서 ‘사랑과 영혼’ 도자기 체험이 진행된다고 하니 관심이 있는 분들은 아이들과 함께 마을 회관 앞으로 모이시면 되것습니다”

무슨 영화에서나 봤음직한 ‘사랑과 영혼’ ? 그래서 조카들과 함께 회관 마당으로 나갔더니 훌륭한 도자기 체험 세트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는 종현 오빠가 열심히 물레를 돌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모처럼 시골 할머니 댁에 온 동네 꼬마들은 신기한 도자기 체험에 신이 나서 흙장난에 여념이 없었다.

명절에 고향에 온 선후배들을 위해서 직접 도자기 체험 도구를 챙겨가지고 고향에 온 종현 오빠!~ 역시 그 다운 행동이다. 알고 보니 몇 해 전부터 종현 오빠는 이렇게 오랜만에 고향을 찾는 꼬마아이들을 위해서 도자기 체험 행사를 펼쳐왔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그 마음이 참 대단했다. 더불어 나는 고향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싶은 마음도 들었다. 종현 오빠의 마음이 더더욱 곱게 느껴지는 것은 돈을 많이 벌어서 번쩍 번쩍하는 승용차를 타고 고향에 찾아오는 마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자기 삶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도자기 빚는 재주를 아이들에게 선물한다는 그 마음이 너무 감사하게 느껴졌다.

“오빠!~ 요즘에는 어떻게 지내셔요? 가마에 불 지필 때 한번 찾아가본다고 해 놓고는 사는 게 바빠서 아직이네요”

“응 나는 잘 지내지. 도자기 굽고, 요가하고, 다도하면서 살아. 11월에 가마에 불 넣을 건데 그때 한번 놀러 와라”

분청사기가 유명하다는 전남 무안. 박 도공은 전남 무안 어느 한적한 시골에 들어가 직접 돌을 줍고 진흙을 개어 흙집을 만들어 살고 있다. 물론 단순한 흙집이 아니라 도자기를 빚는 도예공방이다 보니 전통 가마까지 제대로 갖추어놓은 곳이다.

스스로 남과 다른 삶을 선택해서 살고 있는 박 도공은 특별히 많은 가진 건 없지만 자족하는 마음으로 현재의 삶에 만족한다고 말한다. 내 기억 속에는 강경상고를 졸업하고 통신회사에 근무한다는 소식을 얼핏 들은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그 사이 어떤 일이 있었기에 종현 오빠가 이렇게 수행자처럼 살게 된 것일까?

“세상은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내 주어야 하는 것이지. 고등학교 때부터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농사나 지으면서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 초가집 하나 지어 놓고 책도 보고, 요가도 하고, 거문고도 뜯으면서 그렇게 살고 싶다는 꿈이 있었지”

사람들은 누구나 저마다의 꿈을 가지고 산다. 하지만 자기가 생각한 삶을 실천에 옮기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런데 박 도공은 33세 되던 해에 다니던 직장을 정리하고 원주에서 도예수련을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는 35살에 전남도립대학교에서 도예와 요가를 전공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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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원하던 도예가의 꿈을 이룬 박 도공은 학교를 졸업하고 4년 동안 목포장애요양원에서 도자기 직업 재활교사로 활동한다. 그러다 불현듯 안정된 직장을 집어던지고 인도 북부 바라나시 힌두대학 요가 학과에 입학해서 요가 수련과정을 마쳤다는 것.

“인도에 머무르는 동안 계획에 없던 좋은 경험들을 했지. 붓다의 유적지를 돌아보면서 하나를 얻기 위해서는 하나를 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

그렇게 불현 듯 인도에 다녀와서 무안에 둥지를 틀고 흙과 돌을 주워 집을 지었다는 것이다. 그는 특별히 큰 수입은 없어도 나름 부족함이 없으니 이것이 행복이라고 말한다.

흙 냄새를 맡으면서 요가 수행을 하고 다도를 즐기면서 그렇게 유유자적 혼자 살아가는 일이 때론 외롭기도 하지만 세상에 외롭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고 되묻는다.

한참 대화를 나누다보니 도자기에도 종류가 많다는데 어떤 도자기를 만드는지 살짝 궁금증이 생겼다.

“응 내가 빚는 자기는 분청사기야. 분청사기는 굉장히 자유롭고 서민적인 자기라고 할 수 있지. 선비정신이 깃든 백자, 귀족적인 분위기를 가진 청자가 있지만 분청사기는 그냥 ‘바람같다’고 표현하면 맞을 것 같어”

‘바람’이라는 말에서 흙냄새가 훅 끼쳐온다. 그 속에서 구비 구비 산등성이를 거쳐 온 여울물 소리도 들리는 것 같고, 또 어느 조용한 산사의 풍경 소리도 들리는 것만 같다. 또 흙가마 속에서 활활 타 오르는 장작불의 온기도 전해진다. 어쩜 박 도공이 47년이란 시간동안 그토록 찾아 헤맨 길은 ‘바람의 길’이 아니었을까?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던 “11월 2일에 가마에 불 지핀다. 항상 금요일에 가마에 불을 지피니까 한번 놀러와” 라고 한 말이 바람처럼 귓전을 멤돌다 간다. 요즘 사람들은 전기 가마를 써서 현대식으로 편하게 산다더만 새재 촌티를 못 벗어던진 종현 오빠는 아직도 꼬박 1박 2일 동안 가마에 장작불을 지핀단다.

활활 타오르는 가마의 불꽃을 떠올려보는 사이 무안 산자락을 붉게 물들이는 단풍잎들이 고즈넉한 가을 산사의 풍경이 되어 가슴 한켠에 밀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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