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계의 거목 앙드레 김(본명 김봉남,사진)씨가 12일 오후 7시25분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5.
고인은 지난달 말 폐렴 증세로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오다 이날 병세가 악화돼 세상을 떠났다.
병원 쪽은 그가 병세가 밖으로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아 그동안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해 왔다. 최근까지 대규모 패션쇼를 여는 등 75살의 나이가 무색하게 왕성한 활동을 해왔다.
그는 1935년 경기 고양군 신도면 구파발리(지금의 서울 은평구)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고교를 졸업한 뒤, 61년 고 최경자씨가 서울 명동에 설립한 국제복장학원의 1기생으로 디자이너 수업을 받았다.
62년 서울 소공동에 ‘살롱 앙드레’(앙드레 김 의상실)를 열고 한국 최초의 남성 패션 디자이너가 됐으며, 개성 있는 디자인이 인정을 받아 66년 프랑스 파리에서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패션쇼를 열었다.
2002년 펴낸 회고록 <마이 판타지>에서 그는 “오드리 헵번이 주연한 영화 <퍼니 페이스>에서 디자이너 지방시의 의상을 본 것”이 디자이너가 된 계기였다고 회고했다.
그는 1960년대에 영화배우 엄앵란씨 등의 옷을 만들며 유명세를 탔고, 80년 미스유니버스 대회의 주 디자이너로 뽑혔다. 88년 서울올림픽에서는 대한민국 대표팀의 선수복을 디자인하는 등 패션 디자이너로서 40여년 동안 ‘독보적인’ 지위를 누렸다.
그의 패션쇼는 당대 최고의 연예인들이 등장해 남녀가 이마를 맞대는 장면으로 피날레를 장식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팝스타인 고 마이클 잭슨과 배우 나스타샤 킨스키, 브룩 실즈 등 해외 스타들도 그가 디자인한 옷을 입었다.
패션 디자이너 이상봉씨는 “앙드레 김 선생님은 옷에 관심이 없는 이들에게도 패션이 무엇인지 보여줬고, 그로 인해 꿈을 꿀 수 있도록 했던 패션 디자이너”라고 평했다.
그렇지만 그의 패션 세계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화려한 색감, 고유의 문양, 여성스러움을 강조한 ‘오트 쿠튀르’(고급 맞춤복) 디자인 등을 통해 고유한 패션 세계를 구축했다는 평과 동시대성이 결여됐다는 평이 공존한다.
또 그는 일부에서 “미디어를 통해 위상이 과장됐다”는 지적도 받았다. 이런 평가는 흰옷만 고집하는 독특한 패션, 외국어를 섞어 쓰는 특유의 어눌한 말투 등으로 대중에게 친숙한 ‘연예인’ 이미지를 획득한 데서 영향받은 측면도 있다. 그는 1992년 ‘옷로비 사건’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섰다가 본명(김봉남)이 알려지며 곤혹을 겪기도 했다.
그는 2000년 프랑스 예술문학훈장을, 2008년 대한민국 문화훈장 보관장(3등급) 등을 받았다.
평생을 독신으로 지냈으며, 유족으로는 1982년 입양한 아들 중도(30)씨가 있다.
고인의 장례는 5일장으로 치러지고 유해는 오는 16일 천안공원묘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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