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무배 타고 있다가 망망대해서 북 선박에 구조
1978년 행방불명돼 북한에서 28년동안 살아 온 김영남(45)씨가 자신은 나무배에 타고 있다가 우연히 북한에 들어가게된 것일 뿐 납치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부인인 요코다 메구미씨는 1994년 4월 13일 정신질환으로 병원에서 자살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29일 금강산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북한으로 가게 된 경위와 메구미씨의 사망 원인 등에 대해 밝혔다. 김씨는 고교 1학년 재학 중이던 1978년 8월 선유도해수욕장에 놀러갔다가 폭력배같은 선배로부터 폭행을 당한 뒤 “일시적으로 몸을 피하자는 생각에 바닷가의 조그만 나무쪽배에 숨었다”고 사건의 발단을 설명했다. 이후 김씨는 “배에서 깜박 잠이 들었고 눈을 떠보니 섬은 보이지 않고 해수욕장의 불빛도 보이지 않았다”며 “섬으로 가기 위해 애를 썼으나 섬은 보이지 않아 ‘죽었구나’하며 긴장했었다”고 말했다. 그러던 차에 마침 배가 한 척 지나갔고 김씨는 구원 요청을 한 끝에 배에 오를 수 있었으며, ‘여기서 집에까지 지금 가기는 힘드니까 우리 있는 곳에 갔다가 집에 가면 어떻겠냐’는 말에 따른 것이 김씨가 밝힌 입북 경위다. 김씨는 “북한에 들어간 후에야 그 곳이 북한 남포항인 줄 알았으며, 겁이 나고 걱정이 되서 며칠동안 잠도 못 자고 밥맛도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씨는 그 곳에 있는 동안 북한 사람들의 친절한 대우로 마음이 풀어졌으며, 무료로 대학 공부를 할 수 있고 병원 치료도 돈 없이 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자 어려운 가정 형편을 고려해 북한에 남기로 했다고 한다. 그는 “여기서 공부 좀 하고 다시 가면 되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그동안 28년이 흘렀고 인생이 됐다”고 말했다. 자신의 직업을 통일 부문 관련 사업이라고 밝힌 김씨는 메구미씨를 1986년 초 ‘사업상 특성’으로 인해 만나 일본말을 배웠다고 전했다. 그는 “메구미와 1986년 8월 결혼해 3년간 딸을 낳고 잘 살았다. 그런데 메구미에게서 병적 증상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김씨는 “결혼하기 전부터 병적 증상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으며, 아이를 낳고 건강관리를 잘 하지 못해 악화됐고 우울증이 동반하면서 정신이상 증상까지 나타났다”며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 봤지만 결국 1994년 4월 13일 사망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 동무(메구미씨)가 말한 것처럼 어렸을 때 사고를 당해 뇌를 많이 다쳤다”며 “같이 살 때도 여러 번 자살 시도가 있었는데 병원에 가서 자살했다”고 덧붙였다. 일본 측에 대해서는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김씨는 일본 측에 건네 준 메구미씨의 유골과 관련, “간곡히 부탁해서 유물을 넘겨줬다”며 “당시 일본 측은 유골을 받으면서 내게 직접 받았다는 것과 메구미 부모에게 책임있게 전달하고 공표하지 않겠다는 자필 확인서도 남겼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물을 여기저기 나눠주며 감정 놀음을 벌인 끝에 가짜라는 졸렬하고 유치한 주장을 했다”며 “남편인 나와 메구미에 대한 모욕이고 참을 수 없는 인권유린이다. 어떻게 산 사람을 죽었다고 말하겠나.”라고 성토했다. 김씨는 “나를 전면에 놓고 북을 반대하는 불순한 정치적 목적 달성의 수단으로 이용하려 한다고 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편 김씨는 딸 은경씨의 이름이 혜경씨로 알려진 것은 딸에게 충격을 주지 않게 하기 위해 어렸을 적 아명으로 고쳐서 알려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은경씨에 대한 일본행 요구와 관련해서는 “은경이는 메구미와 나의 딸이다. 요구 자체가 납득이 안 된다.”며 “일본 당국이 취하는 걸 볼 때 보내고 싶은 생각이 없고 본인도 안 간다고 말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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