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읽을 때 누구나 한번쯤은 자신만의 밑줄을 긋는다. 감동을 줬던 문장에 노란 형광펜이나 하얀 색연필로 밑줄을 긋는 것이다. 그건 음악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여서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와 연주에는 온통 ‘마음의 밑줄’이 그어져 있다. 그런 점에서 유진(23)의 두번째 솔로 앨범은 밑줄 긋는 재미를 쏠쏠히 챙길 만한 앨범이다. 모든 수록곡마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의 진심이 느껴지기 때문이다.“1집 앨범은 너무 조급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S.E.S’시절의 연장선과 같은 느낌이었죠. 하지만 이번 앨범에서는 철저한 준비 작업을 거쳤어요. 제 색깔을 분명히 내려고 한거죠.”굳이 이 앨범의 색깔을 정의하라면 다름아닌 ‘갈색’이다. 빛바랜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가슴 시린 색깔은 앨범 주인과 닮아있다. 6개월간의 공정을 거친 새 앨범 제목은 유진의 생년월일을 의미하는 ‘810303’. ‘새롭게 태어난다’는 뜻에서 정했다. 대중의 촉수를 건드리는 감성 멜로디로 유명한 조규만이 프로듀서를 맡아 유진의 매력을 최대화하는 데 일조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1집에 비해 더욱 느긋해지고 끈적해진 유진의 보컬.“예전에는 그저 작곡가에게 돈 주고 곡을 받은 뒤 알아서 노래하는 식이었죠. 그런데 이번 앨범에서는 달랐어요. 작사, 작곡, 편곡, 프로듀싱까지 의견을 조율해가며 교집합을 만들었던거죠. 그러다보니 제 목소리도 노래마다 가장 어울리게 바뀐 것 같아요.”유진의 거듭남은 머리곡 ‘폭풍의 언덕’에서 시작된다. 외로운 현악 중주로 시작되던 노래는 스패니시 기타와 캐스터네츠, 보컬이 합류하면서 바람에 흩날리는 집시풍의 치마처럼 강한 인상을 남긴다. 이어지는 타이틀곡 ‘윈디(Windy)’는 다양한 드럼 비트를 선보이고 있는 이번 앨범의 대표곡. 처음부터 끝까지 변화를 거듭하는 박자는 그저 그런 댄스곡의 범주를 벗어난다. 피아노 연주로만 노래를 부른 ‘늦은 사랑’은 가엾고 수줍은 느낌의 발라드. 일상의 배경음악으로 삼을 만하다. 이 앨범에서 유진의 풍성한 곡 해석력이 가장 잘 드러나는 노래는 ‘리모트 컨트롤(Remote Control)’. 놀라우리만치 관능적인 목소리가 말초 신경을 자극한다.그러나 유진은 자신의 노래에 100% 만족하지 않는다. 여전히 자신의 노래가 현재진행형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 앨범의 서두를 암시하는 ‘810303-투 비 컨티뉴드(To be continued)’란 짧은 곡을 앨범 마지막에 비장하게 실은 것도 이 때문이다.“억지로 변하려 하지 않아도 변하는 게 있더라고요. 데뷔하고 지난 8년 동안 자연스레 변해온 제 안팎의 것들, 그것들을 이번 앨범에 담은거죠. 자연스레 새롭게 태어나게 된 느낌입니다.”
- TA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