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2010년 작성하고 청와대에 보고한 ‘KBS 조직개편 이후 인적 쇄신 추진방안’ 문건이 공개됐다. 문건에 따르면 ‘좌편향’ 간부들은 반드시 퇴출하고 간부급 기자·PD의 성향을 사찰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어 당시 이명박정부가 전방위적으로 KBS 인사에 관여하려 했던 정황이 그대로 드러났다.
언론노조 KBS본부(본부장 성재호, 노조)는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연구동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 정보기관이 공영방송사 구성원들을 좌파 등으로 낙인찍고 퇴출을 지시한 정황이 담긴 국정원 문건 내용('청와대·국정원, KBS좌편향 색출주도' 뉴스 영상링크)을 공개했다.
노조에 따르면 해당 문건은 ‘KBS조직개편 이후 인적쇄신 추진 방안’이란 제목의 보고서로 이명박 정부 당시인 2010년 6월3일 작성됐다. 보고서는 첫머리에 “KBS는 6월4일 조직개편 단행하고 후속인사에 착수할 예정으로, 이에 대한 면밀한 인사검증 통해 부적격자 퇴출해야”라고 적시했는데, 실제 KBS에선 2010년 6월4일 대대적인 조직개편이 있었다. 노조는 보고서 첫머리를 언급하며 ”KBS의 조직개편과 인사에 맞춰 작성했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고 지적했다.
이날 노조가 공개한 보고서는 △KBS 기자·PD들을 이념성향과 정부 동조 정도에 따라 낙인찍어 퇴출을 주도하고 △언론노조 KBS본부 조합원들을 배제토록 하며 △김인규 당시 KBS사장과 협의해 부사장, 본부장 인사를 처리하도록 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이 같은 보고서가 이명박 정권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실의 지시에 따라 국정원이 작성해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는 게 노조 측의 설명이다.
보고서는 당시 조직개편과 관련 “새해 정기인사 이후 6개월이 안 된 점을 감안해서 조직안정 차원에서 문제간부 교체에 초점을 맞춰서 추진”, “김인규 사장 이후의 복무를 엄정하게 평가해 <좌편향, 무능 무소신, 비리연루> 여부를 감안, 인사대상자 색출”이라는 기본방향을 담았다. 또 실제 KBS 기자·PD의 구체적인 이름과 성향을 분석, ‘좌편향’으로 낙인을 찍어 인사 대상자로 거론하기도 했다.
이 보고서에서 좌편향으로 낙인 찍힌 용태영 KBS기자의 경우 (인용 구절 내 직책은 당시 직책) “용태영 취재파일 4321부장은 정연주 전 사장 추종하는 인물로 새노조(언론노조 KBS본부)를 비호하고 반정부 왜곡보도에 혈안. ‘한명숙 무죄’, ‘4대강에 무슨 일이?’, ‘봉하마을’ 등”이라고 적시됐고, 소상윤 PD는 “소상윤 라디오국 EP는 사원행동(언론노조 KBS본부의 전신) 출신, 과거 편파방송 자성 없고 좌파세력 비호”로 기재됐다. 그 외 이강현·윤태호·김영신·이상요 PD, 최춘애 KBS아메리카 사장 등이 ‘좌편향’이란 평가를 받았다.
국정원 보고서는 KBS 기자·PD들을 이념성향뿐 아니라 정권에 대한 협력의 적극도 정도를 기준으로 ‘무소신’ 낙인을 찍어 관리하려한 내용도 담고 있었다. ‘무소신’ 간부로 지칭된 이들에 대해 ‘보직변경’을 언급하거나 사장 최측근 간부 5인에 대해 ‘특별 관리’가 필요하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임창건 당시 보도국장에 대해선 “시사기획 쌈 출신, 편파방송 탈색 주력했지만 보도책임자 자질 미흡, 천안함 사건, 노무현 1주기 등, 수동적인 업무자세”라고, 오진선 당시 기획국장에 대해선 “이원군 전 부사장 쪽 사람으로 좌파 눈치보기 체질화돼 있어, 소극적 태도”라고 평가돼 있었다. ‘백운기 당시 비서실장 이준용, 최철호 등 5인방’에 대해선 “김인규 사장 신임 받아 잘 나간다”며 “특별관리” 필요성을 시사했다.
성재호 언론노조 KBS본부장은 “앞서 국정원 개혁위가 공개한 문건은 이른바 연예인, 방송인에 대한 블랙리스트 문건으로 알려져 있었다. 근데 상당 부분은 방송사 언론사를 상대로 진행됐고, 결국 공영방송사 인사와 조직에 개입하고 언론인을 탄압한 언론공작 파괴문건으로 생각한다”며 “국가기관이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위반한 중대한 범법 행위”라고 비판했다.
성 본부장은 “국정원과 문재인 정부는 이 문건 전체를 언론인들 앞에 공개해야 한다. 국회 차원 국정조사가 실시돼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국민 차원의 조사라고 진행돼야 한다”며 “자유한국당은 언론파괴 공범으로 무슨 짓을 했는지 스스로 고백하고 진상규명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문건이 작성되고 집행은 단순히 국정원 직원의 힘만으론 되지 않는다. 내부에서 국정원에게 정보를 보고하고 국정원이나 청와대로부터 지시를 받아 실행해 옮긴 책임자들이 있다”며 “모든 것이 형사처벌을 추진하고 아울러 민사상 손해배상 등 모든 걸 해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겠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