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저지에 거주하는 새런 부커(38)는 지난 5월, 9.11테러로 죽은 줄로만 알았던 남편 션 부커가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부풀었다.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남편이 교통위반 티켓을 받았다는 통지서가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티켓 위반자는 션이 아니라 그의 이름을 도용한 신원 절도범인 것으로 드러났고, 새런의 실낱같은 희망도 사라져 버렸다. 9.11테러 피해자들의 신용이 도용된 사례는 부커가 처음 이지만 수사 관계자들은 부커처럼 생명을 빼앗긴 후에 이름까지 도둑맞은 다른 피해자들이 틀림없이 더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테러 직후 실종자들을 찾으려는 가족들이 제공하는 상세한 개인정보가 웹사이트와 언론을 통해 널리 유포됐고, 세계무역센터(WTC)에 입주했던 많은 금융관련 사무실들이 붕괴되면서 비밀 개인정보를 담은 수 천장의 서류가 길거리에 휴지조각처럼 굴러 다녔기 때문에 희생자들의 신원사항을 이용하는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관계자들의 말대로 9.11테러가 신분절도범들에게 더 바랄 것이 없는 보물 상자를 제공한 셈이다. 소비자 단체인 신분 절도 연구센터(ITRC)는 당시 이 같은 상황을 예견하고 금융기관에 9.11관련 신분절도에 대해 경고했으나 이를 예방하기에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연방 무역 위원회(FTC)에 따르면, 지난해 신분절도에 관련된 소비자 신고가 8만 6천여 건이 접수 됐으며, 이는 전년도 3만 여건에 비교하면 신분 절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새런 부커의 경우, 9.11테러 이후 8개원이 지난 5월에 변호사들로부터 남편의 교통 위반 문제를 도와 주겠다는 편지를 받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서류상 실수로 간주해 무시하다가 혹시 정말 남편이 살아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변호사에게 연락했다. 조사한 결과 가이아나 출신 이민자인 레슬리 패트릭 컴버 배치라는 사람이 우선 통행을 위반해 교통사고를 일으키고 90달러짜리 티켓을 받았는데 운전 면허증 사진은 자기 얼굴이지만 성명, 주소, 생년월일 운전 면허 번호 등은 남편의 개인정보인 것으로 밝혀졌다.
10월 24일 뉴욕에서 체포된 컴버 배치는 마리화나 소지 혐의로 1998년 추방된 바 있어 불법입국 혐의로 기소됐다.
김철훈 기자 kchh@krnews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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