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선 대진표가 확정됐다. 곁다리로 도내서는 김해시장과 거창군수 재선거판도 편성됐다. 늘상 그랬던 것처럼 공천 진용을 짜는 과정은 시끄럽고 사납다. 이런 소용돌이 속에서 선거철마다 제기되는 화두가 대중의 정치 무관심론이다.
하지만 실상을 보면 대중이 정치에 그리 무관심해 보이지는 않는다. 엄밀하게 말하면 무관심이 아니라 무심(無心)으로 쓰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인 것 같다. 정치의 계절이면 그런 경향은 최고조에 달한다. 주석의 첫 화제는 대개 정치로 시작하지만 결론은 “그들만의 리그가 내게 무슨 상관이냐”는 자조로 이어진다. 정치무심론은 관심이 없다기보다 정치인들의 갈등과 정쟁에 짜증난 민심을 ‘퉁쳐서’ 그렇게 표현한 것이라고 보는 게 옳을 성싶다.
선거철이면 신문과 방송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가 갈등이다. 갈등의 소란 속에 후보들이 부르짖는 세대교체론이나 각종 ‘심판론’이 유권자들에게는 그저 그런 상투적 선동구호로만 들린다.
누에가 뽕잎을 먹고 산다면 정치는 갈등을 먹고 산다. 고대에 형성된 정치(政治)라는 두 글자 모두에는 다스림이 있다. 당시의 시대상황으로 볼 때 다스림에는 억압과 지배라는 강압적 수단이 필연적이다. 억압과 지배는 곧잘 피억압자와 피지배자의 반발을 불러일으킨다. 정치권력들은 그런 민초들의 반발을 때로는 채찍으로, 때로는 당근으로 다스리고 회유하며 권력구도를 이어왔다.
문득,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손학규 더불어민주당 전 상임고문에게 하소연했다는 일화가 떠오른다. 안 대표는 “양당을 비판하면 양비론이라고 하고, 여당을 공격하면 왜 더민주에서 나왔냐고 하고, 야당을 공격하면 새누리당 2중대라고 한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새로운 인물을 영입하면 왜 안 알려진 사람을 영입했냐고 하고, 알려진 사람을 영입하면 왜 옛날 사람을 받느냐고 한다”고 했다. 안 대표가 내린 결론은 “모든 것에 비판논리가 있는 것 같다”였다. 그의 푸념에서 작금의 정치현실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노자는 (정치를) 상선약수(上善若水)라고 했다.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은 것이라는 뜻이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아니하고(水善利萬物而不爭;수선리만물이부쟁),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자리에 자리하기 때문(處衆人之所惡;처중인지소오)이다. 그래서 노자는 물(水)의 정치를 도에 가깝다(故幾於道;고기어도)고 설파했다. 고기어도, 의역하면 ‘오류가 거의 없다’는 말이다.
노자를 패러디해 현 정치민심을 해석해본다면 ‘이롭게 하지도 못할 것이면서 그저 다투기만 하고,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자리에는 결코 앉으려 하지 않고 높은 곳만 지향하니, 도에 이르기에는 많이 부족하다’는 명제도 성립되지 않을까?
그런 명제가 머리 한구석에서 고개를 내밀 즈음 가수 이선희가 부른 ‘갈등’의 가사가 귓가에 맴돈다.
‘지금 나의 곁에 있는 사람은 누구, 진정 날 사랑하실 사람인가요? 그대 사랑 영원하다 약속하지만, 추억 속의 그 사람도 그랬답니다.’
20대 총선이나 각종 선거에 나서는 이들이라면 이 노래의 가사를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정치에 무심한 듯 보이는 민초들의 진심이 그 가사 속에 담겨 있을지 모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