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선생님이 나 지금 벌주고 있는거야?”
임종하기 하루 전에 그 말을 남기고 떠난 사람이 있다.
이유야 어찌됐던지간에 죽은 사람만 서러운 것이다. 장례식장에서 영정 사진 앞에 넋을 놓고 앉아있는 아들의 입에서 "이 병원은 사람을 얼마나 많이 살리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이 죽는 날은 기가 막히게 맞춰요."하는 탄식어린 소리가 나왔다.
자신의 건강을 무척 챙기는 사람이었다.
그러기에 큰 병원이 더 좋을 것 같다는 믿음으로 조그만 동네의원보다는 자신의 집에서 가장 가까운 K대학병원에서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았고 또 그 대학병원 가정의학과에서 당뇨약을 주기적으로 처방을 받고 있었다.
연초에도 그 병원에서 내시경을 포함한 종합검진을 받고 큰 이상 소견이 없다는 소리를 들었고 자주 병원에 올 필요가 없다고 4개월치의 당뇨약을 처방 받았다.
그런데 추석전부터 소화가 안되는 것 같아 9월 달에 그 대학병원에 찿아가서 다시 내시경 검사를 받아 놓은 상태였고, 그 사이 기침을 하여 동네 의원에 가서 검사를 받으니 빌리루빈 수치가 높다고 큰 대학 병원으로 가서 치료를 받으라고 해서 바로 그 대학병원 응급실을 찿았다.
그리 큰 병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으로 찾아간 병원 응급실에서 당직 선생님에게 식도암 4기(말기)에 그것도 그 암이 간과 폐에 완전히 전이가 되서 어찌 손을 쓸 수도 없고 가망이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러면서 응급실 레지던트 선생님이 보호자들에게 앞으로 2~3개월밖에 못산다는 청천 벽력과 같은 소리를 하면서 항암요법도 할 수 없으니 집에 가거나 입원을 하려면 호스피스 병동으로 입원을 하라고 하였다.
아무리 그것이 의학적으로는 옳은 판단일지라도 갑작스러운 소리에 충격을 받고 경황이 없는 보호자들에게 처음부터 희망을 가져보지도 못하게 하는 행동은 적어도 사람의 생명을 다르는 의사로서는 취할 태도가 아닐 것이다.
아무런 마음의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그동안 철썩같이 믿고 다녔던 대학병원에서 그런 소리를 듣는 다는 것은 환자 자신이나 그의 보호자의 입장에서는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의사가 신이 아니기에 의사 역시도 남들과 똑같은 실수를 사람이라는 것에는 동의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보호자가 불만스러운 것은 그런 상황에서 보인 그 레지던트 선생님의 태도다. 비록 현대의학으로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 환자일지라도 환자나 보호자의 입장에서는 "최선을 다 해보자." 는 등 따듯하고 실낱같은 희망의 소리를 듣고 싶은 것이지, 처음부터 그것도 아무런 마음의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가능성이 없으니 집에 가던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하던 결정을 하라." 라는 소리가 아닌 것이다.
응급실 레지던트 선생님들이 힘들고 고단한 것은 익히 알겠으나 환자나 보호자의 감정에 대한 배려도 없이 상투적인 설명과 오만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환자나 그의 보호자에게 또 다른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할 것이며 의과대학에서도 단순히 의학지식을 가르치기보다는 의사로서의 마땅히 갖춰야 할 인성 교육에 대해서도 심도 있는 교육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