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은 정부의 재정운용 방식에 획기적인 변혁을 가져온 해로 기록될 것이다. 지난해까지 무려 45년 동안 유지돼 오던 재정운용의 기본 틀이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이다. 형식과 내용면에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일대 혁신이다. 2006년 10월 ‘국가재정법’이 나오기 이전까지 정부는 1961년에 만들어진 ‘예산회계법’에 기초해 나라살림을 꾸려왔다. 건국 이후 만들어진 ‘재정법’이 ‘예산회계법’으로, 다시 1981년 일부 개정을 거쳐 45년 만에 ‘국가재정법’으로 완결되었다. 10환이 1원으로 디노미네이션이 이뤄진 지난 1961년 예산규모(일반회계)는 459억 원이었다. 그것이 지난해 147조 원으로 무려 ‘0’이 4개 더 붙었다. 예산규모는 3000배 이상 늘었지만, 당시의 법규를 적용하다 보니 많은 부작용과 비효율이 나타났다. 국가재정법은 그런 배경에서 탄생했다. 이 법의 골자는 네 가지다. △멀리 내다보는 ‘국가재정운용계획’ △투명성을 높인 ‘디지털예산회계제도’ △탄력성을 높인 ‘총액배분자율편성제도’ △목표를 분명히 한 ‘성과관리제도’. 국가재정법이 나무라면, 디지털예산회계제도는 뿌리다. 여기서 자양분을 끌어올려 나머지 3개의 가지와 잎을 살찌우는 시스템인 것이다. ■ ‘클릭’ 한번으로 예산 내역 쫘르르 2007년 1월부터 디지털예산회계시스템이 가동됐다. 예산의 편성부터 집행, 회계결산, 성과관리 등 재정활동의 전 과정을 전산화하여,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관리토록 한 것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공공기관의 모든 재정정보를 연계해 공공부문 전체의 재정활동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했다. 보다 짜임새 있고, 보다 쉽고, 보다 정확하게 재정현황을 파악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로써 재정운용의 효율성과 투명성을 높이고 예산낭비를 막는 국가재정시스템이 완성됐다.

먼저 예산과 회계부분에서 따로 운영되었던 예산정보관리시스템(FIMSys)과 재정정보시스템(NaFIS)를 하나로 합쳤다. 일반적으로 정부의 재정활동은 ‘예산편성→재정집행→회계결산→성과평가’라는 일련의 과정을 거친다. 그러나 지금까지 예산편성은 예산정보관리시스템, 집행·결산은 재정정보시스템으로 이원화돼 있었다. 성과정보는 아예 시스템 없이 수작업으로 관리됐다. 전년도의 집행·성과 정보가 예산편성의 기초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 적절한 정보 전달과 활용이 이뤄지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이제 예산·재정정보 시스템이 합쳐지고 성과정보까지 연계됨으로써 재정활동 과정에서의 모든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됐다. 보다 효율적인 재정운용이 가능해진 것이다. 따라서 정책 사업의 시작과 끝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사업의 전 생애(Life-cycle)’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사업관리시스템’은 사업 추진 배경부터 예비타당성 조사결과, 총사업비 변경내역, 연차별 예산집행 현황까지 모든 사업정보를 시스템에 기록한다. 각 단계마다의 집행 상황도 실시간으로 정리되며, 성과를 평가한 결과도 시스템에 기록으로 남는다. 뿐만 아니다. 이들 정보는 각 부처 홈페이지 등을 통해 국민들에게 모두 공개된다. 사업자 선정 부조리나 계약 과정상의 의혹, 예산 유용 등의 비리가 끼어들 틈이 없어진 것이다. ‘품목별’로 운영되던 예산이 ‘프로그램’ 단위로 바뀌면서 예산의 내역을 파악하는 일도 수월해졌다. 일선 공무원들의 책임감이 커진 것은 당연하다. 기획예산처 이수원 재정정책기획관은 “디지털예산회계 시스템을 통해 국민 누구나 관계부처 장관에게 불법적인 재정지출에 대한 시정을 요구할 수 있게 됐다”며 “만약 이를 통해 예산절감 효과를 얻는다면 신고 국민은 성과금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신고 사안은 해당 부처 장관으로부터 그 처리 결과를 통지받을 수 있다. ▲ 품목별 예산제도 vs 프로그램 예산제도 기존 ‘품목별 예산 제도’에서는 서울-부산, 서울-광주를 연결하는 도로를 설치할 경우 인건비, 시설비, 보상비로 건설비가 한데 묶여 기입된다. 따라서 어느 노선에 얼마가 투입됐는지, 어느 노선이 더 효율적으로 건설됐는지를 한눈에 알 수 없었다. 지방의원이나 주민 등 이해관계자가 사업의 전체비용을 알기 위해서는 품목별로 흩어져 있는 비용을 일일이 찾아 더해 봐야 했다. 심지어 해당 부처에서도 담당자가 바뀌면 투입된 총 예산이 얼마인지를 파악할 수 없을 정도였다. 정부가 새로 도입한 ‘프로그램 예산제도’는 서울-부산 노선을 하나의 항목으로, 서울-광주를 다른 항목으로 묶어 그 사업에 들어간 총예산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또 사업마다 목표와 투입비용, 그에 따른 성과평가가 한결 쉬워진다. 세금이 어떻게 사용됐는지,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도 간단하게 파악할 수 있다. 정부 예산 운영의 투명성과 탄력성이 커지고 국민들의 참여도 활발해 질 것으로 예상된다.■ 5년 내다보는 나라살림… 성과 없는 곳에 예산 없다 지금껏 정부는 1년을 단위로 예산을 편성해왔다. 당장 눈앞의 일을 해결하는 데 주력했다. 하지만 이 같은 방식으로는 저출산·고령화 문제 등 현재 우리사회가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었다. 앞서 선진국들이 그러했듯 중장기 재정운용계획은 선택이 아닌 필수 사항이 되었다. ‘국가재정운용계획’의 도입으로 5년 단위 나라살림 짜기가 가능해졌다. 시계(視界)가 넓어진 것이다. 또 일반회계, 특별회계, 기금으로 칸칸이 떨어져 운용되던 예산을 하나로 합쳤다. 재정의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고, 사업의 우선순위에 따라 효율적으로 재원을 배분하기 위함이다. 또 ‘총액배분자율편성제도’를 도입해 각 부처가 스스로 사업 예산을 편성토록 했다. 중장기 계획을 토대로 사업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그에 따라 지출한도를 정해주면, 나머지 예산 편성과 집행은 각 부처 자율에 따라 시행토록 한 것이다. 부처의 전문성과 현장경험을 살려 예산 운용의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과거에는 부처가 필요 예산 규모를 정해 기획예산처에 요구하면 예산처가 이를 개별 협의·심의하는 방식으로 정해졌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과다요구-대폭삭감’의 관행이 생겨났다. 막대한 행정낭비가 불가피했다. 하지만 총액배분 자율편성제도 도입 첫 해 25% 안팎이던 부처-예산처간 예산 조정 폭은 5%대로 낮아졌다. 변화는 이뿐만이 아니다. ‘성과관리제도’ 도입으로 부처의 책임성이 높아졌다. 이제 각 부처는 실질적 성과를 내지 못하면 예산을 배정받을 수 없다. 구체적으로, 각 부처는 재정사업 추진으로 기대되는 성과와 이에 대한 측정방법, 달성 정도를 성과계획서나 성과보고서 형태로 작성해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만일 사업의 목적이 불분명하거나 성과가 미흡하다면 예산은 삭감된다. ■ 깐깐하고 투명한 나라살림으로 미래 준비 시대와 상황의 변화는 항상 그에 상응하는 개혁을 요구한다. 예산도 예외일 수 없다. 오늘날의 재정환경 변화는 한 마디로 ‘세입 감소, 세출 요인 증가’로 요약된다. 성장률·출산율은 낮아지는데 반해 고령화 등으로 복지 지출 요인은 증대되고 있다. 꼭 필요한 곳에만 지출하는 알뜰한 나라살림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 같은 상황에 대처하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지출의 효율성을 제고시키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디지털예산회계제도, 총액배분자율편성제도, 성과관리제도 등은 바로 이러한 고민에서 나온 제도들이다. ‘보다 투명하게, 보다 정밀하게, 보다 명확하게’. 참여정부의 나라살림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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