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20세기 초에 조선으로 밀려든 근대화의 물결은 화류계도 변모시켰다. 국립문화재연구소의 ‘경성화류의 변천’이라는 기록에 따르면 근대적 의미의 경성 화류계는 1888년 화월(花月)이라는 일본 요릿집이 오사카에서 게이샤(일본의 기생) 한 사람을 데리고 온 데서 비롯됐다. 그러다 잇따라 터진 전쟁이 화류계의 모습을 바꿔놓는다. 1894년 청일전쟁이 막을 올리자 그 전장인 조선으로 일본인들이 모여들고, 덩달아 일본 요릿집이 증가해 순식간에 10여 곳으로 불어났다. 전쟁 중 한때 일본인 거류민들은 집을 군대 숙소로 내놓아야 했고, 일본 요릿집도 밤에는 군대에 공급할 도시락을 만들어야 했다. 이 와중에 1895년 가을 일본 영사관은 일본에서 게이샤를 데려와도 좋다고 요릿집들에 허가한다. 이에 따라 당시 34명에 이르는 게이샤가 수입됐다.경성 화류계는 10년 뒤에 터진 러일전쟁을 만나 ‘발전’ 속도를 가속화한다. 러일전쟁 기간인 1904년에는 일본 요릿집들이 조합을 결성하고 마침내 유곽까지 설치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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