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마트에 갔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양배추가 한 통에 5천원 하더군요. 삶아서 맛있게 밥을 싸먹을 생각이었는데 왜 이렇게 오른건지, 이걸 사야해 말아야해 한동안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우연찮게 제주도 양배추 밭으로 취재를 하러 가게 됐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먹는 겨울 양배추의 90%가 제주도에서 나온다더군요. 값이 훌쩍 뛴 이유를 현장에서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밭으로 달려가는 차 안에서 보니 파랗게 양배추들이 잘 자라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차에서 내려서 밭 속으로 걸어 들어가 보니 상황이 사뭇 다르더군요. 양배추들 알이 너무 작았습니다. 밭주인 분은 그게 다가 아니라면서, 칼로 직접 양배추들을 두 동강 내면서 안에도 잘 익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셨고요. 모종을 심었을 땐 태풍 세 개가 잇따라 오면서 뿌리를 제대로 못 내리게 흔들었고, 겨울이 오면서는 햇볕이 일단 적게 든 데다 한파가 빨리, 강하게 오는 바람에 자라질 못했다는 겁니다. 자라야 할 때 자라지 못하면 양배추는 가운데 있는 굵은 줄기가 위를 뚫고 올라오면서 아예 못쓰게 된다고 설명도 했습니다. 결국 작년에 비해선 3분의 1은 수확량이 줄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다음 간 곳은 브로콜리 밭이었습니다. 이것도 역시 잎들이 무성하

게 잘 자라 있었습니다. 그래서 ‘브로콜리는 추위에 강한가보네’ 했었는데, 역시 아니더군요. 브로콜리는 그 풀잎이 아니라, 그 한 가운데 피는 꽃이었습니다. 지금쯤이면 사람 주먹만큼은 올라와서 지나다가 보고 싹 따내는 작업을 해야 하는 시기인데, 들춰보니 메추리알 크기부터 커봐야 달걀 크기 정도밖엔 안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농민들은 한결 같이 제주도가 이렇게 추운 적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보통 낮엔 10도 까지 오르고 했는데, 올해는 너무 춥다는 것이죠. 온난화 현상이 더울 때는 더 덥게 추울때는 더 춥게, 진폭을 키우는 상황이라 제주도도 이례적인 한파를 맞게 된 겁니다.

이렇다보니 서울로 올라갈 채소가 부쩍 줄어든 것이죠. 제주도는 겨울 양배추와 당근의 90%, 감자는 70%, 무는 60%가 나는 곳입니다. 당근밭과 감자밭도 가보니 당근은 70%, 감자는 40% 정도 수확량이 줄어들 것 같다고 했습니다. 당연히 값이 뛸 수 밖에요. 당근이 작년보다 4배 값이 올랐고 양배추가 3배, 무는 2.6배, 그리고 남해안에서 주로 나는 배추도 같은 이유로 4배 값이 뛰었습니다.
그러면 언제 가격이 좀 내려갈까 궁금하실텐데요. 2월은 돼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 주 중에 제주 날씨가 좀 풀릴 전망이긴 한데, 그래봐야 현재 잘 농사가 안 지어진 밭에 남은 작물들 뽑아 올리는 수준이다 보니 그다지 값이 내려가지는 않을 전망입니다. 문제는 그 이후 상황입니다. 미뤄졌던 작물들이 자라서 나오면서 동시에 2,3월에 맞춰 심었던 작물들까지 한꺼번에 풀리면 값이 한꺼번에 떨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농민들이 또 걱정하는 건, 조금 올랐다고 해서 바로 수입산 마구 사다가 풀어버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두가지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심려 깊은 대책을 내놔야 하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인상 깊었던 건, 농민 분들 표정이 생각만큼 어둡지 않았다는 겁니다. 평생 농사를 짓고 사셨던 분들인 만큼, 한 해 농사에 일희일비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오히려 “너무 비싸다 바로 타박하지 않고 현장까지 내려와 살펴줘서 고맙다”고들 하시더군요. 이런 농민분들이나 소비자들 위해서 올 해 날씨는 별 탈 없이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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