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폐지 전날 11만명 왔지만 30분~1시간이면 입장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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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엑스포는 80개 전시관 중 아쿠아리움·한국관·주제관 등 주요 8개 전시관은 인터넷(30%)과 여수 현장 키오스크(70%)에서 예약을 해야만 볼 수 있다. 줄서서 기다리는 시간을 줄이기 위한 시스템이다. 그러나 이날 연휴를 맞아 11만명의 관람객이 몰리며 아침 일찍 8개 전시관 예약이 끝나 버리자, 다른 관람객들이 몰려와 격하게 항의한 것이다. 소란에 놀란 조직위는 전시관 사전 예약제를 전격적으로 폐기하고 선착순으로 바꿔 버렸다. 이튿날인 28일, 여수엑스포 주요 전시관의 대기시간은 한때 7시간이 걸릴 정도로 늘어났다. 예약제가 기능을 했으면 30분~1시간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원칙이 무너지면서 모두에게 피해가 돌아간 것이다.
"열불나네. 땡볕에서 이게 뭔 고생인가!"
이날 오전 전남 여수엑스포 박람회장 내 아쿠아리움 앞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대기 행렬이 줄지어 있었다. 그늘막과 햇볕을 오가며 3시간 이상씩 기다리던 관람객들은 녹초가 된 모습이었다. 일부는 아예 돗자리를 깔고 앉아 부채질을 했다. 오전 9시부터 꼬박 3시간을 기다려 아쿠아리움에 들어서던 관람객들은 한마디씩 던졌다.
"최첨단 시대에 뭐 하는 짓이야." "하필 우리가 올 때 예약제가 없어져."
어머니와 함께 왔다는 임은경(31·부산)씨는 "고령의 어머니 다리가 퉁퉁 부었다"며 "다 함께 고생하니 위안을 삼을 뿐"이라고 했다.
앞서 오전 9시엔 상황이 더 심각했다. 관람객들이 인기 전시관인 아쿠아리움으로 대거 모이면서 한때 줄이 3㎞에 달했고, 대기 시간이 7시간으로 늘어났다. 조직위는 안내요원들을 투입해 관람객들을 다른 전시관으로 분산시켜야 했다. 여수엑스포 조직위가 전날 전시관 예약제를 전격 폐지하면서 예견된 사태가 현실이 된 것이다.
이날 관람객은 4만4000여명으로 전날(11만명)의 반도 안 됐지만 인기 전시관은 3시간 대기가 기본이었다. 한 조직위 관계자는 "관람객 수가 다시 10만을 넘기면 어떤 결과가 될지 짐작도 안 된다"고 했다. 조직위에선 최소 5시간 이상 대기는 각오해야 할 걸로 보고 있다.
반면 27일 예약제 폐지 이전에 미리 예약을 해 놔서 사전 예약 권리를 인정받은 사람들은 5~10분 만에 입장했다. 조직위 손혁기 기획홍보과장은 "예약제를 도입한 취지가 바로 이런 것"이라고 했다.
여수엑스포의 예약제 폐지는 '떼법'이 원칙을 무너뜨릴 때 어떤 결과가 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서병곤(41) 주제관 운영팀장은 "예약제 시행 당시엔 예약을 못하고 줄에 섰던 관람객들이 '억지 관람'을 요구하다 제지하는 보안요원의 따귀를 때린 적도 많았다"며 "오늘은 그런 항의가 없으니 차라리 마음 편하다"고 했다.
한 여직원은 강짜를 부리는 관람객에게 "예약이 없으면 입장이 안 된다"고 했다가 입에 담을 수 없는 상소리를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듣고 눈물을 흘리며 사직서를 내기도 했다. 이 여직원의 동료들은 "사람 만나기가 두려웠을 것"이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조직위가 너무 성급하게 원칙을 무너뜨렸다고 보고 있다. 보완을 통해 인터넷을 못하는 노인 등 예약이 어려운 계층을 배려하면서도 예약 시스템 자체는 지켜나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한 조직위 관계자는 "소수자 보호와 소수집단의 이기주의는 구분해야 한다"면서 "소수의 주장에 밀려 다수가 불이익을 받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김양현 전남대 철학과 교수는 "눈앞의 이익과 각자 편의 때문에 원칙을 무시하는 한국적 병폐는 고쳐야 한다"며 "국제적 행사인 엑스포에서 이런 모습이 다시 드러나 아쉽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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