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통합의 구심점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절이다. 노사, 계층, 세대 간 갈등이 한국사회를 혼돈으로 몰아가고 있다. 그런데 전태일 정신을 휴머니즘의 상징으로, 한국의 사회통합적 자산으로 새롭게 조명하는 연구가 이뤄져 관심을 모은다. 13일은 전태일(1948∼1970)의 34주기다.경남대 정성기(경제무역학부)교수는 지난 6일 국민대에서 열린 ‘2004사회경제학계 공동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전태일, 전태일의 사람들, 한국사회:사회통합적 노사관계와 사회 구성을 위한 시론’이란 논문에서, “전태일은 오늘날 노동계, 진보세력 등 특정집단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남녀노소, 빈부귀천 모두에게 존중받는 역사적 인물”이라며, 따라서 전태일은 “심각한 분열·소외·갈등 속의 한국사회를 통합하고 구성하는 계기로서의 큰 잠재적·현실적 힘이 있는 사회 역사적 자산”이라고 주장했다.정 교수는 전태일 또는 그의 정신에 영향을 받은 각계 사람들을 분류하고, 이를 통해 전태일 정신의 사회통합적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정 교수는 먼저 ‘전태일의 사람들’이 정계와 정부, 언론·출판계, 학계와 교육계, 종교계 등이 폭넓게 존재해 왔음에 주목한다. 예컨대 정계와 정부에서 보면, 현재 여·야와 진보·보수적 성향을 막론하고 김영삼,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정·관(政·官)계로 진출한 인물들 중 상당수를 꼽을 수 있다. 하다못해 대표적인 정통 보수정객인 이철승도 전태일에 대해 “그는 독재와 배고픔에 대한 항거로 살신성인함으로써 역사에 기여했다”고 밝힌 적이 있다.노동계에서는 최근 보수적인 한국노총이 조직적으로 전태일 정신 계승의 대열에 합류했다. 언론계에서도 진보적 신문만이 아니라 보수신문까지 전태일에 대해 우호적이며, 학계·종교계에서도 개혁적·혁명적 성향의 진보적 인사들만이 아니라 보수적 인사로 불리는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다. 전태일에 관한 영화가 만들어지고, 어린이 위인전에 오르는 것은 전태일 정신이 과거 저항적 성격을 넘어, 노동계급 내부와 사회 전체적 통합력을 갖게 됐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정 교수는 개인 전태일의 이러한 사회구성력, 사회 대통합력은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박정희와 김대중, 노무현 등 지도자들의 사회통합력이 얼마나 빈약한지, 혹은 이들이 얼마나 사회 분열의 역기능을 갖고 있는지 비교해 보면 그 의미가 더 분명해진다고 설명한다.그는 “전태일 사후의 ‘전태일의 사람들’을 통해 전태일 개인은 물론 개인 존재 일반에 대한 원자론적 개인주의와 ‘개인과 사회’의 이분법을 넘어서 사회구성·통합으로 가는 실마리를 찾는 하나의 시도로서 이 문제제기가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