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한국시각)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대국민 성명을 통해 즉각사퇴를 재차 거부하고 권한을 부통령에게 이양하겠다고 밝히면서 이집트 시위사태가 더욱 혼미해지고 있다.
무바라크 대통령의 사임 발표를 기대했던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의 시위자들은 그의 연설내에 놀란 표정을 짓고 분노감에서 손바닥으로 이마를 감쌌다. 일부 시위자들은 눈물을 보이거나 경멸의 뜻으로 구두를 머리 위로 들고 흔들었다.
무바라크 대통령이 대국민 연설을 끝내자 시위자들은 "물러가라!" 계속 외쳐댔다.
예상을 뒤엎은 무바라크 대통령의 발표에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국가안보회의를 소집하는 등 국제사회도 동요하는 가운데, 이집트에서는 또다시 대규모 금요기도회가 예정돼 있어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이집트 정부가 '권력이양' 부분을 부각시키며 무바라크 대통령의 '사실상 즉각 퇴진'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집트 시위대와 국제사회의 시각은 여전히 무바라크 대통령이 권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언론 등에 따르면 무바라크 대통령이 슐레이만 부통령에게 이양한 권한은 '일상적인 정부 운영권한'인 것으로 전해졌다. 군 통수권을 비롯해 치안유지, 경제운용을 비롯해 시위대와의 협상 권한 등이 포함됐다.
그러나 오는 9월 대선을 앞두고 핵심적 요소로 부각되고 있는 의회 해산과 내각 해산, 헌법 개정 권한은 여전히 무바라크 대통령이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집트 야권과 시위대는 '거수기' 의회 해산과 헌법 개정 등을 줄곧 요구해왔다. 그러나 무바라크 대통령이 핵심요구에 대해 거부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잠시 소강상태를 보였던 시위가 재차 점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시위대는 날이 밝는대로 대규모 시위를 열 예정이다. 야권을 대표하고 있는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은 이날 CNN에 출연해 "이집트가 폭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이집트 정부는 무바라크 대통령이 사실상 사퇴한만큼 시위를 자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사미 쇼크리 미국 주재 이집트 대사는 무바라크 대통령의 성명발표 직후 CNN에 나와 "슐레이만 부통령이 사실상의 대통령"이라며 "부통령이 모든 권한을 가졌다"고 주장했다. 슐레이만 부통령도 성명을 발표하고 "시위대는 집으로 돌아가라"고 촉구했다.
무바라크 대통령이 사실상 사퇴했다는 이집트 정부의 주장에 대해 CNN은 "'그렇다면 진짜 사퇴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의문이 일고 있다"고 전했다.
무바라크 대통령은 이날 국영TV를 통해 '권한을 슐레이만 부통령에게 넘기겠다'면서도 '즉각사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국난극복을 위한 노력과 국민적 대화재개, 폭력사태에 대한 조사, 헌법개정을 언급했다.
무바라크 대통령은 그러나 "외국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거듭 밝혀 즉각 사퇴할 뜻이 없음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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