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우리 사회에서 휴가 또는 휴식은 ‘쉰다’는 말로 통용되면서 ‘놀고 먹는다’는 부정적 의미로 받아들여지곤 했다. 그러다 주5일 근무제가 직장의 새로운 업무형태로 자리 잡게 되면서 휴가가 ‘생활의 재충전’이라는 긍정적인 의미로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또한 ‘개인’과 ‘삶의 질’에 대한 의미가 중요시되면서 휴가는 개인의 자유와 생활의 활력을 위한 새로운 문화의 패러다임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사람들은 휴가를 더 이상 놀고 마시는 소모적인 삶의 코드가 아닌 재충전과 의미 있는 시간으로 여기고 있다. 물론 요즘 경기가 좋지 않아서 회사에서 일부러 연차를 늘려서 쓰도록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집에서 쉰다는 것이 마냥 편할 수만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왕 쉬는 거라면 잠시나마 모든 걸 놓고 몸도 마음도 함께 쉬어보자.
자연과 문학 속에서, 때로는 평화로운 길을 느릿느릿 걸으며, 자신만의 ‘진정한 쉼’을 찾아 떠나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의미 있는 휴가를 만끽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해 괜찮은 곳들을 추천하고자 한다.
1. 시민모임 두레 - 자연과 문학을 찾아 떠나는, 조금은 다른 휴가
두레는 지난 91년 문학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시민모임으로 문화기행과 생태기행을 진행하고 있다. 문화기행은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문화답사를 통해 유적지나 문학작품과 관련된 지역을 돌아보고, 생태기행은 농촌의 전원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테마기행으로 현지에서 할 수 있는 체험학습 위주로 이루어진다. 이를 통해 사람들에게 문화와 환경의 소중함을 알리고자 하는 것이 두레의 설립 목적이기도 하다.
요즘 어린이나 가족단위 등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체험학습이 다양한데 두레가 바로 이런 학습형태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91년부터 매월 답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궁이나 박물관 투어를 처음으로 도입한 것도 두레라고 한다. 보통 기행의 목적지를 정할 때 따로 정해놓은 기준은 없다. 두레의 조채희 사무국장은 "결연을 맺거나 해서 마을을 정해놓지 않고 전국 어느 곳이든 시기에 맞춰서 직접 사전답사를 하고 목적지로 결정합니다. 대신, 상업적이지 않고 순수한 사람들이 모인 시골을 찾으려고 최대한 노력합니다. 문화 유적지도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곳을 찾아다니려고 하지요"라고 말한다.
조 씨는 두레기행의 가장 큰 매력에 대해 “대가족 여행 같은 느낌”이라고 했다. 직접 참가한 이들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양하고 편안한 분위기 때문에 가족여행 같다고 얘기한단다. 그녀는 핵가족화로 대부분 가족구성원이 적은데 기행을 통해 세대 간 소통의 기회도 된다고 덧붙였다. 기행에 참가하는 비용은 구나 관에서 운영하는 곳에 비해 가격이 높은 편이다. 지원금을 일체 받지 않고 순수 본인 부담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체험 통해 문화 ·생태의 소중함 깨달아
두레기행은 서울기행과 지방답사로 나눠지는데 휴가시기에는 지방답사를 특별기획으로 따로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서울기행은 성곽이나 능선 따라 걷기 등 그때그때 주제를 정해서 이루어진다. 지방답사는 주로 문화기행 형태로 문학작품의 배경이 된 곳이나 소설가의 고향을 찾아가는 식이다.
작년에는 고 최명희 선생의 소설 ‘혼불’의 주요 배경지이자 작가의 선친의 고향이기도 한 남원의 ‘혼불’ 문학마을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 곳에서 참가자들은 혼불문학관도 방문하고 작은 음악회를 열어 판소리도 배웠다. 또한 농촌 체험과 산사 기행도 함께 진행해 참가자들의 반응이 아주 좋았다고 한다.
보통 문화기행은 문학인, 생태기행은 생물교사가 주축이 되지만 조 씨는 이 둘을 함께 진행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형태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궁을 방문했을 때 궁의 건축이나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문화기행이 이루어지고, 주변 식물이나 나무를 관찰하노라면 생태기행도 함께 가능합니다. 저희는 무엇보다 인간은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 살아야 한다는 점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어느 곳을 방문하든지 문화와 생태를 병행해 진행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동안 기행을 하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았던 곳을 묻자 조 씨는 “가는 곳마다 저마다의 매력이 있어서 모두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지자체들의 경쟁적인 개발로 지나치게 다듬어진 마을을 볼 때면 많이 안타깝지요. 요즘에는 상업화된 곳들이 많아서 순수한 자연의 느낌을 지닌 곳을 찾기 어려워요. 우리들이 편안하게 찾아뵙는 시골 부모님댁 처럼 마을들도 무조건 개발하기보다 예전 그대로의 느낌을 간직하도록 그냥 두면 좋겠습니다”고 아쉬워한다.
두레는 앞으로도 다양한 기행을 꾸준히 진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얼마 전에는 온라인 소통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인터넷 카페를 개설하기도 했다. 아직까지는 기행 참가자 대부분이 주변 사람들의 입소문을 통해 오기 때문에 수가 많지 않지만 두레기행의 의미를 알고 찾는 이들이 점차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
올 여름 두레의 휴가 답사는 곡성에서 화순까지 지리산 자락의 고향마을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전원생활체험을 비롯해 천문대, 문학관, 낙안읍성 등을 돌아보며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 관심 있는 이들은 두레 홈페이지에 들어가 세부일정을 보고 전화로 예약하면 된다. (문의:02-745-5813)
2. 제주올레 - 올 여름, ‘제주에 올레?’
느림의 미학, 도보순례 등 걷기여행을 즐기는 여행자들이 늘어남에 따라 국내외의 다양한 장소가 걷기여행의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그 중에서도 많은 이들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페인의 산티아고 길을 꼽지만, 한국에는 그에 뒤지지 않는 ‘제주올레’가 있다. 우리나라 걷기여행의 붐을 일으키고 있는 제주올레만의 매력에 빠져보자.
올레란 제주도 말로 ‘거릿길에서 대문까지의, 집으로 통하는 아주 좁은 골목길’을 뜻한다. 또한 발음상 ‘제주에 올레?’ ‘제주에 오겠니?’라는 이중의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현재 제주올레는 해안가를 따라 12코스까지 개장되어 있다. 제주올레의 서동성 사무국장은 제주올레를 만들게 된 계기에 대해 “제주의 속살을 보여줌으로써 그 동안 제주를 여행하면서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참 모습을 보게 하기 위함입니다. 또한 그 길을 통해 도심생활 속 지친 삶의 위안과 치유를 주고자 함이지요”라고 말한다.
제주올레 코스를 만들고 운영하자니 많은 사유지들과 개발된 곳들 때문에 어려움도 적지 않단다. 그는 특히 “많은 길들이 이미 대부분 포장이 되어 있어 걷기에 행복한 흙길, 숲길, 옛길을 찾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또한 비영리 단체임에도 불구하고 수요자들이 과도한 서비스 요구, 예를 들어 가이드북을 모든 곳에서 요구한다든지, 길을 잃은 데 대한 책임을 신랄하게 따진다든지 하는 것과 재정상의 어려움은 상존하는 난제”라고 말했다.
▲올레길을 안내하는 표시. 화살표를 따라 해안가를 끼고 제주올레를 걷는다.
길에서 느끼는 평화와 위안, 행복
그가 생각하는 ‘진정한 쉼’이란 무엇일까. “일상의 모든 걸 한시적으로라도 다 비울 수 있는 것. 그리고 고스란히 그 순간을 향유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치게 걸음으로 인해 비우고 종국엔 지친 행복에 빠진다면 진정한 쉼이 되지 않을까요.”
제주올레에서는 매년 방학기간에 방학올레를 진행해 오고 있다. 그는 물론 올해도 방학에 자유로운 분들(학생만 타겟으로 하는 건 아님)을 위한 프로그램을 며칠에 걸쳐서 할지 고민 중이라고 한다. 숙소문제, 참가인원 제한 문제 등이 정리되면 올해도 방학올레는 계속될 것이라고.
제주올레는 앞으로 제주를 온전히 걸어서 돌 수 있는 길을 만드는 게 목표다.
그리고 언젠가 올레길 내에서 세계인이 함께 자유로이 10박 이상을 하며 즐기는 진정한 의미의 축제를 열 계획도 갖고 있다. 그 날을 위해 제주올레 사람들은 계속해서 제주의 새로운 길을 찾고 또 만들고 있다.
산티아고 길 도보순례에 다녀온 뒤 감명을 받아 처음 제주올레 만들기에 나섰던 전 언론인이자 <제주 걷기여행> 저자인 서명숙씨. 그녀는 블로그를 통해 “많은 올레꾼(제주올레를 걷는 여행자를 지칭하는 말)들이 이 길에서 평화와 위안, 그리고 행복을 느꼈노라 고백했다”고 말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제주에는 올레를 따라 쉼 없이 걷고, 또 걷는 여행자들이 있다.
서 씨의 말처럼 제주올레에는 아름다운 풍광, 변화무쌍한 날씨, 맛있는 음식, 소박한 인정, 제주의 역사와 문화와 생태 그 모든 것이 다 있다. 이를 직접 느껴보고 싶다면 올 여름, 제주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