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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체호프에 관하여>
  • 조기환
  • 등록 2025-02-20 11: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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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출판유통통합전산망

2021년 『픽션의 가장자리』에서 스탕달, 발자크, 포크너 등을 다룬 랑시에르가 2024년 체호프로 돌아왔다. 오직 체호프만으로 책 한권을 썼다. 이 작은 책은 체호프의 단편처럼 힘 있고 크다. 특히 상상력과 작품 해석의 여백이 광활하다. 정치와 미학의 관계를 파고들며 급진적 사상을 구축해온 랑시에르는 이 책에서 체호프의 소설을 통해 ‘자유’를 고찰한다. 다만 문학을 도구화하지는 않는다. 랑시에르는 작품을 자기 관점에 끼워 맞추지 않고, 자신이 작품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작가의 임무는 먼 곳에 있는 자유의 파열을 예속의 시대 속에 새겨넣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랑시에르는 이를 실현한 작가로 체호프를 꼽는다. 체호프는 러시아 혁명의 전조가 사회를 둘러쌀 때 직접 정치적 견해를 밝히지 않고, 사회가 얼마나 예속 상태인가를 인식·진단하는 데에만 힘을 쏟았다. 창조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둔 채. 

총 아홉 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앞 장의 결론이 뒤 장의 서두로 이어지면서 책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질문이 된다. 저자는 특히 시간에 주목한다. 시간의 무심함, 시간의 비밀, 시간의 사용…… 시간을 관습적으로 반복하고 진지한 일에만 쏟는 것은 복종이다. 벼락같은 변화는 ‘순간’을 통해 도래한다. 이러한 시간관념은 하이데거가 논한 ‘카이로스의 시간’(일종의 결단, 균열의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랑시에르는 「꿈」에서 경찰들이 본인 임무를 잊은 채 유랑자와 함께 시베리아의 광활한 공간을 바라보는 데서 시간의 균열을 포착한다. 「어느 이름 없는 사람의 이야기」에서는 하인이 자기 직업을 포기할 때 혁명적 시간이 도래한다고 해석한다. 랑시에르는 동일하지 않고 반복적이지 않은 시간에서 미래를 향한 돌파구를 찾는 것이다.

체호프의 소설에서 경찰이나 관료들은 협박과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꿈을 포기하라고 요구할 뿐이다. 랑시에르가 체호프의 「꿈」을 중점적으로 분석하는 이유다. 예속은 공권력에 굴복하는 상황을 일컫는 게 아니다. 마치 ‘아무 일 없었던 듯 모든 것이 지속되고, 반복되는 동일한 상황에 대중이 순응하는 것’이다. 라프체프라는 인물이 이렇게 산다. “모든 것을 시간의 흐름에 맡기”는 라프체프는 랑시에르가 볼 때 전형적으로 예속 상태에 놓여 있다. 

체호프는 영리하게도 등장인물을 앞서가는 법이 없고 자신과 등장인물을 동일시하지도 않는다. ‘시간’이 흐르는 향방을 쫓으면서 시간이 멈출 때 그 순간을 포착한다. 작가는 관조하는 사람이다. 단편소설이 고골에게 감각적 세계를 펼치는 순간이었다면, 체호프에게는 어떤 장소에서 멈춰 서는 순간이라는 게 랑시에르의 분석이다. 

러시아는 자유라는 주제를 다루기에 알맞은 나라다. 게다가 19세기에 러시아 문학은 하나의 세계적 현상이었다. 당대에 체호프가 직면한 비판은 정치적 목소리를 내지 않고 현실에 ‘무관심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문학과 정치의 밀접한 관계를 탐구하는 랑시에르는 “작가란 낱말의 다의성과 표현의 미묘한 뉘앙스를 인식하는 존재”라고 규정한다. 예컨대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레닌과 체호프에게 갖는 의미는 전혀 다르다. 레닌은 여러 모순적 대안 가운데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반면, 작가에게는 모순 자체가 질문의 핵심이 된다. 작가는 등장인물의 몸에 활력을 불어넣으면서 추상적 미래를 보여주는 것을 해내는 데 그 역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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