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한대(漢代)의 국도(國都). 현재 산시성 서안시 서북 교외에 위치. 전한 · 고조7년(B.C. 200), 진시황제가 창시한 흥락궁을 수리하여 장락궁이라 고치고 그 외곽성을 장안성이라 명명. 도읍을 낙양(산시성 임동현 동북)에서 옮기고 혜제1~5년(B.C. 195~B.C. 190)에 확장했다. 성벽은 동 5940m, 남 6250m, 서 4550m, 북 5950m. 남쪽에는 돌출부가 있고 서에서 북에 걸쳐서는 크게 굴절하여 좌우는 불균형. 그때문에 남쪽 성벽은 남두(南斗), 북쪽 성벽은 북두(北斗)의 모양을 따서 두성(斗城)이라고 불렀다는 천문설과 이 부근에서 동북으로 흐르는 위수 때문이라고 하는 지형설, 먼저 완성된 궁전시가를 둘러싸고 있기 때문이라는 기능설이 있다. 성내에는 장락궁, 미앙궁을 비롯하여 북궁, 계궁(桂宮) 등이 있고 또한 무제 때에는 건장궁이 새로 조영되었다.
장락궁(長樂宮) Changluogong
장안성내(內)의 동남쪽에 위치한다. 진의 흥락궁을 전한 초기에 수리, 장식을 가한 궁전이다. 주위 20리(약12km), 그 전전(前殿)은 동서 약 115m, 안쪽 길이 약 27.5m, 성곽내에는 시황제가 27년(B.C. 220)에 축조한 홍대(鴻台), 전전 후방에는 무제가 세운 임화전(臨華殿), 서쪽에는 태후가 상거(常居)하던 장신궁을 비롯하여 장추전, 영수전, 영녕전 등이 있었고, 또한 온실전도 있었다 한다. 왕망은 궁의 이름을 고쳐서 ‘상락실’이라 하였다.
건장궁(建章宮) Jianzhanggong
한나라의 장안성내에 있던 궁전. 무제의 태초원년(B.C. 104) 백양대가 불타버린 후, 그 염승(厭勝, 점[占]) 때문에 세웠다고 전하는 대궁전. 이궁은 미앙궁의 서남성 밖, 태액지의 남쪽에 설치되어있는데 미앙, 건장의 두 궁을 연결하기 위하여 중앙에 성벽이 설치되고 연못 위에 높이 걸쳐서 만든 각도(閣道)가 있다. 주위 30리(약 17.5km) 정문의 여합문을 또한 벽문이라고도 하며 동의 봉궐, 서의 신명대를 비롯하여 여러 곳의 원궐, 병풍궐, 정간루 등이 있고 모두 높이 25~50장(丈, 58~115m)의 장대한 건축이었다.
정간루(井幹樓) Jingganlou
건장궁내의 높은 누각. 무제가 B.C. 100년경에 조영하였다. 『삼보황도(三輔黃圖)』 등에 높이 50장(丈, 약 100m)이라고 전하지만 적어도 40~50m는 되었다고 상상된다. 정간은 정행(井桁)의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