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원과 운전 기사 등에게 상습적으로 폭행 및 폭언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부인 이명희(70) 전 일우재단 이사장 측이 자신의 혐의에 대해 '완벽주의' 성향 탓에 벌어진 우발적 사건이라고 해명했다. 의도를 갖고 폭행과 폭언을 행사한 것이 아니라는 취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판사 송인권)는 16일 상습특수상해 등 혐의로 기소된 이 전 이사장에 대한 첫 공판을 진행했다.
정식재판은 지난 3월 기소 이후 9개월여 만이다. 공판준비기일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이 전 이사장은 이날 직접 법정에 출석해 재판에 임했다.
이 전 회장 측은 검찰이 밝힌 대부분의 혐의를 인정했다. 다만 이 전 이사장 측은 심리 성향을 부각하며 폭행과 폭언에 의도가 없었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이 전 이사장 변호인은 "이런 행위와 태도를 반성하는 것이 기본적인 입장”이라면서도 “기본적으로 이런 행위를 한 이유는 성격 자체가 본인에게 굉장히 엄격하고, 같이 일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기대치가 있어서다. 일을 못하면 화내는 그런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변호인은 이어 "이 전 이사장은 완벽주의자다. 주변사람이 차질없이 업무를 하길 바라는 마음가짐이 있고 응하지 못하면 상대방에게 화를 내는 심리적 상태가 있다"며 "이번 사건 행위는 심리상태 때문에 기본적으로 발생했고, 본인의 자발적 의사로 범행에 이른 것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이 부분을 참조해달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변호인은 "이 전 이사장은 동종전과가 없고, 우발적으로 발생한 사건이며 수단과 방법도 통상보다 경미하다"면서 "상습성을 인정하기에는 의문이 있다. 재판부가 집중적으로 살펴봐달라"고 강조했다.
이날 재판에선 이 전 이사장이 피해자들에게 했다는 욕설이 다수 등장해 법정 분위기가 술렁이기도 했다. 검사가 피해자의 진술조서를 읽어내려가는 과정에서 이 전 이사장이 발언한 욕설이 반복적으로 나오자 송 부장판사는 “욕설이 많이 나오는 거 같은데 검사님도 직접 그 부분을 재연하기 민망할 것 같다”며 “화면에만 서증을 띄워주시고 욕설을 뺀 나머지 부분을 천천히 읽어주시면 욕설은 우리가 알아서 보겠다”고 말했다. 검사는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이 전 이사장은 2011년 11월~2017년 4월 경비원과 운전기사 등 직원 9명을 상대로 총 22회에 걸쳐 상습 폭행 및 폭언을 한 혐의로 불구속기소됐다.
서울 종로구 구기동의 한 도로에서 차량에 물건을 싣지 않았다는 이유로 운전기사의 다리를 발로 걷어차 2주 동안 치료를 받게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인천 하얏트 호텔 공사 현장에서 조경 설계업자를 폭행하고 공사 자재를 발로 차는 등 업무를 방해하기도 한 혐의를 받는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 자택 출입문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비원을 향해 조경용 가위를 던진 혐의도 있다.
재판부는 내달 14일 다음 재판을 열고 증인 신문을 진행키로 했다. 이 사건과 관련된 경비원과 운전기사가 증인석에 앉을 예정이다.
한편 이 전 이사장은 필리핀인 6명을 대한항공 직원인 것처럼 초청해 가사도우미로 불법 고용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현재 항소심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