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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 취업난에 부모·친구 볼 면목 없어 '필참'은 옛말
  • 김만석
  • 등록 2017-02-21 10: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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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5%가 졸업장 안 찾아가 "가봐야 취준생은 찬밥신세"



지난 11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한국외국어대 서울캠퍼스. 토요일이라 학생들이 별로 없는 교정(校庭)에서 졸업 예정자 이모(26)씨가 셀카봉을 들고 학교 곳곳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씨는 학사모와 졸업 가운을 입고 있었지만 축하해주는 가족이나 친구 없이 혼자였다. 꽃다발도 들고 있지 않았다. 이날 이씨처럼 학위복 차림으로 혼자 사진을 찍는 학생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사실 이 대학 졸업식은 이날이 아니라 6일 뒤인 17일이었다. 이씨는 졸업식 행사에 참석하지 않기로 하고 미리 '나 홀로 졸업식'을 한 것이다. 이씨는 "취업을 못 한 상태에서 덜컥 졸업을 하게 돼 부모님이나 친구들 볼 면목이 없다"며 "졸업식에 가봐야 취업에 성공한 친구들만 주인공처럼 대접받을 뿐이고 나 같은 취업 준비생은 찬밥 신세"라고 말했다.


극심한 청년 취업난이 대학 졸업식 풍경을 바꾸고 있다. 지난해 청년(15~29세) 실업률은 9.8%로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졸업식 날 동기끼리 모여 사회 진출을 축하하는 것은 옛말이 됐다. 졸업식 참석을 기피하거나 혹시 참석하더라도 가족 없이 혼자 와서 사진만 찍고 돌아가는 '나 홀로 졸업식'이 늘고 있는 것이다. 경희대 관계자는 "보통 졸업식 이틀 전부터 학위복을 대여하는데, 졸업생의 10%가량은 미리 빌려갔다가 졸업식 전에 반납한다"고 했다. 이아영 서강대 학사지원팀 차장은 "작년부터 교수가 직접 졸업생에게 졸업장을 건네주도록 제도를 바꿨는데 넷 중 한 명꼴로 졸업장을 안 찾아간다"고 했다.


올해 연세대를 졸업하는 임모(여·26)씨도 오는 27일 졸업식에 가지 않을 생각이다. 임씨는 "취업도 못 했는데 졸업식이나 졸업장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했다. 대신 임씨는 취업 못 한 다른 친구와 함께 학교 부근 사진관에서 '우정 사진'을 찍는 것으로 졸업식을 대신했다. 신촌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는 서모(35)씨는 "2~3년 전부터 졸업하는 친구끼리 사진관을 찾는 일이 많아졌다"며 "요즘 졸업식 날 학교에서 사진 찍는 손님은 줄었지만 이런 학생들 덕분에 전체 매출은 늘었다"고 했다. 혼자 찾아와 '졸업 사진을 찍어 달라'는 학생이 많아지자 대학가 사진관들은 학사모와 학위복을 갖춰놓고 있다.



취업 준비생들에겐 성대한 졸업식 참석이 고역(苦役)이라고 한다. 지난 17일 학위 수여식이 열린 한국외대 캠퍼스에는 가족이나 친구로부터 졸업을 축하받는 학생들로 붐볐지만, 이런 광경을 본체만체하고 도망치듯 서둘러 학교를 빠져나가는 학생도 적지 않았다. 이날 졸업식에 참석한 이모(29)씨는 "세 번이나 졸업을 유예하고도 취업에 실패한 '불명예 졸업'"이라며 "부모님도 안 부르고 혼자 졸업장만 받아간다"고 했다. 연세대의 한 교수는 "예전에는 가족끼리 캠퍼스를 둘러보느라 공식 행사에 빠지는 경우는 있었지만, 졸업식 자체는 '필참'이었다"며 "그런데 요즘은 공식 행사는 물론이고 졸업식에 대한 관심도 예전만 못하다"고 했다.


어렵게 취업문을 뚫은 학생들도 미취업 상태인 친구들 눈치를 보느라 마음이 편치 않다고 한다. 또 뒤늦게 취업하는 바람에 동기들보다 늦게 졸업하는 경우도 있다. 입학 9년 만에 올해 한국외대를 졸업한 정모(여·28)씨는 "졸업식이라 오랜만에 동기들 얼굴을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취업 준비가 길어지다 보니 다 졸업하고 나밖에 안 남았더라. 참 씁쓸했다"고 말했다. 고려대 졸업 예정자 김모(28)씨는 "동기들끼리 '졸업식에 가느냐'고 물어보기가 조심스럽다. 결국 '취업했느냐'고 묻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라며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에 올라온 사진을 보고서야 누가 졸업했는지 알곤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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