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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문구씨 타계 ‘농촌 최후의 이야기꾼’
  • 뉴스21
  • 등록 2003-03-0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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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밤 세상을 떠난 ‘관촌수필’의 작가 이문구는 토속적인 아름다움을 담은 해학적인 문체로 한국문학에서 독특한 경지를 일궈 왔다. 대중적 인기를 크게 누리지는 않았지만 그의 문체는 한국 문단에서 독보적인 것이었다. 걸걸한 입담에 충청도 방언이 지닌 고유의 의미와 미감을 실은 그의 문체에 대해 작가 송기숙은 “시골 밭둑의 싱싱한 수풀 같다”고 평했다.
2년 전 위암으로 자리에 눕기 전까지 그는 문단 행사나 문인 초상 등에서 일 맡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어울림’을 아는 사람이었다. 친구 많기로, 선후배 챙기기로는 첫손가락에 꼽히는 문인이었다.
좌익에 가담했던 부친을 6·25전쟁 때 잃은 그는 두 형마저 ‘빨갱이 자식’이라는 이유로 대천해수욕장 바닷물에 산 채로 수장되는 뼈아픈 고난을 겪게 된다. 아들과 손자를 먼저 보낸 조부와 어머니도 그 뒤를 이어 세상을 떠났다.
가족을 모두 잃은 그는 고향 대천에서 중학교까지 마친 뒤 1959년 상경해 서울 신촌시장에서 좌판을 벌이거나 떠돌이 행상, 막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서라벌예대에 응시했고 면접을 봤던 김동리는 “특이한 문장”이라며 그를 ‘을류 장학생’으로 뽑아줬다. 동급생으로는 조세희 한승원 이건청 등이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이름을 날렸던 ‘선수’들 중에서 ‘노가다’ 문장으로 주눅들어 있던 이문구. 그의 스승인 김동리는 그를 “한국 문단에서 희귀한 스타일리스트가 될 것”이라고 아낌없이 독려해 줬으며 그의 습작을 논하라는 시험문제를 내기도 했다. 대학시절 이후 이문구는 김동리를 아버지처럼 섬겼다. 김동리의 추천으로 이문구는 등단했고 ‘월간문학’ ‘한국문학’ 등 문예지의 편집장을 맡기도 했다.
졸업 후 이문구는 생계를 위해 노량진에서 동작동까지 도로확장공사도 했고 연희동 외국인학교 터에 있던 공동묘지 3000기를 옮기는 일도 했다. 그러면서 노동의 현장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법을 배웠다.
1970년대 유신시절, 보수와 순수문학을 대표하는 김동리와 진보 진영, 참여문학의 선두에 선 이문구, 스승과 제자의 문학적 경향은 상극이었다. 그럼에도 사제지간의 정은 조금도 변치 않았다. 1988년 서울에서 국제펜클럽대회가 열렸을 때 참여문학을 대표하던 민족문학작가회의와 김동리가 대립 양상을 보이자 그는 스승에게 돌을 던질 수 없다는 이유로 스스로 작가회의를 떠나기도 했다. 스승이 타계한 뒤 1995년 이문구는 김동리기념사업회를 만들고 첫 사업으로 김동리문학상을 제정했으며 떠날 때까지 사업회의 회장직을 맡았다.
2000년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으로 취임한 뒤 그는 김지하 등 작가회의와 소원했던 인물들을 끌어안는 작업을 시작으로 문인 복지에 목소리를 높였다. 작가회의나 문인협회도 군사독재의 시대적 산물이라 여겼던 그는 이런저런 정치적 현안으로 성명을 내야 하는 일에 괴로워했다. 작가는 서재로 돌아가 글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던 그다.
문학평론가 유종호는 그를 “농촌 최후의 시인”이라고 했다. 기세가 담긴 전통사회의 농촌 언어로 빚어온 그의 작품들에는 늘어지고 휘감기는 문장, 풍요로운 토박이말과 사투리를 비롯해 판소리 사설 같은 구수함이 깃들여 있다. 조상으로부터 이어받은 선비 기질과 직접 경험한 밑바닥 삶, 6·25전쟁에 대한 기억이 이문구 문학의 바탕을 이룬다.
“이름 앞에 어떠한 수식도 붙여지길 원치 않는다”는 작가 이문구. 그는 “죽을 때까지 현역작가라는 말을 듣고 싶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마지막 길을 떠나며 이문구는 동시집 ‘산에는 산새 물에는 물새’(창작과비평사)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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