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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목소리의 정치
  • 최명호
  • 등록 2016-03-03 09:3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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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종철 몽골 후레 정보통신 대학 교수(철학박사)


플라톤의 '파이드로스'라는 대화편에 보면 소크라테스가 ‘문자와 목소리’의 관계에 관한 신화를 소개하는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타무스 왕이 다스리는 테베에 토트라는 신이 찾아와서 농사와 천문 지리 및 의료 기술을 가르쳐 준다. 아울러 토트 신은 백성들에게 문자를 가르쳐 주겠다고 제안을 한다. 하지만 다른 기술들은 다 받아들이면서 유독 문자와 관련해서는 왕이 거부하는데, 그 이유가 흥미롭다. 첫째, 문자는 진리를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짝퉁만 가르쳐 준다. 둘째, 문자는 독학을 가능하게 하므로 스승이 필요 없고, 스승의 권위도 잊게 한다. 마지막으로 문자에 의존하다 보면 기억력이 감퇴할 수 있다. 문자는 특성상 대상에 대한 접근에서 간접적이고 보편적이다. 반면 목소리는 철저히 직접적이고 개별적이다. 화석화된 문자는 진리의 흔적(짝퉁)을 상기시킬 뿐이지만, 목소리는 생생한 진리를 영혼에 각인시킨다는 것이다.

 
바로 이틀 전까지 여의도 국회에는 이런 목소리들이 넘치고 있었다. 직권 상정된 테러방지법을 저지하기 위한 야당 의원들의 필리버스터링이 그것이었다. 필리버스터링은 오로지 의원 개개인이 목소리를 통해 의사진행을 저지하는 합법적 의정활동의 한 방식이다. 그러므로 이 목소리의 정치가 갖는 울림의 효과가 적지 않다. 온 국민의 눈과 귀가 여의도로 쏠리고 거의 보지 않던 국회 방송의 시청률이 급상승했다. 필리버스터를 생중계하는 인터넷 방송들이 늘어나고, 의원들이 빠져나간 국회 본회의장은 일반 국민들로 채워졌다. 필리버스터를 한 의원들의 실시간 검색 순위가 급등하고, 그들 사이에서 정치 스타들이 탄생하기도 했다. 그만큼 정치에 대한 관심, 올바른 국정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다는 증좌다. 그동안 볼썽 사나운 몸싸움이나 하고 거수기 행세나 하던 국회의원들도 이미지를 경신하고 있다. 필리버스터의 고유하고 개별적인 목소리가 주권자 국민의 목소리을 재현하고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그들의 목소리는 정치에 환멸과 무관심으로 일관하던 국민들의 영혼을 두드리는 천둥이기도 하다. 그들의 목소리가 전달되는 생생한 현장에는 그동안 우리가 화석화된 문자로만 전달되던 진실, 소문으로만 전해지던 진실들이 넘쳐 나기도 했다.
 
국민들은 필리버스터의 목소리를 통해 테러 방지법이 왜 국민의 기본권을 억압하고 인권을 유린하는 법인가, 우리가 겪고 있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왜 짝퉁 민주주의에 불과한가, 대한민국의 진정한 위기가 테러의 위기인가 전쟁의 위기인가 혹은 바닥에 떨어진 경제의 위기인가, 선거정치에 개입한 국정원에게 다시 무소불위의 권한을 안겨주는 것이 얼마나 위험 한가 등등 그동안 강 건너 불구경하듯 들었던 소문들이 필리버스터의 목소리를 통해 생생하게 되살아나고 있다. 그런데 혹시 이런 영혼의 떨림 같은 소리를 들은 기억이 없는가? 지난 수 십 년간 민주화를 이루어내면서 거리와 청문회장을 울리던 소리가 이 소리가 아니었던가? 이것이야 말로 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이루어지던 직접 민주주의를 환기시켜주는 것은 아닌가? 그동안 익명 속에 감추어져 있던 필리버스터의 목소리가 실종되었던 정치를 소환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지금 우리 국민은 이 필리버스터들에게 열광하고 있는 것이고, 그럴수록 현 정부는 이 열광이 던지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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