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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중년의 이석규 시인이 첫 시집 ‘빈 잔의 시놉시스’을 해드림출판사에서 펴냈다. 도시와 아득히 떨어진 곳에서 불어온 바람이 시집의 책장을 넘긴다. 때 묻지 않은 시정이 바람처럼 고스란히 스친다. 격랑의 바다, 그 흔들리는 뱃머리에서 평형을 잡듯이 한 편 한 편 중심을 잡아 시를 써 묶은 것이 이번 시집이다.
시인은 꽃망울을 ‘시’라고 믿고, 그것을 피우는 농부의 땀방울을 자신의 몫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미약한 시작(詩作)의 힘은 내내 그를 고독하게 하고 절망에 빠트리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붓을 놓지 못한 시인은, 야박하면서도 성스러운 시 세계를 끌어안으며 골방에서 자주 밤을 지새웠다. 시인은 그 고통을 '빈 잔의 시놉시스'로 안았다.
시인에게 시는 냇물 같은 것이었다. 냇물은 아직 바다에 들지 못한 낯선 어느 강 같은 것이었다. 시인은 그 강물이 바다로 가다가 곰 같은 자에게, 늑대 같은 자에게 더럽히지 않게 하려다가 소용돌이로 빠져들곤 하였지만, 꽃망울 하나만은 꽉 붙들어 틔우려고 기를 썼다. 그래서 금계국과 코스모스가 뒤섞인 가을빛의 시집 [빈 잔의 시놉시스]를 내놓았다.
시인은 시집을 펴내면서 문득 어머니 베갯머리에서 들은 삼국지의 적벽대전을 떠올렸다. 당신의 유비와 제갈량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시집이지만, 이제는 시인이 산소를 찾아가 당신께 '빈 잔의 시놉시스'를 읽어드릴 생각을 한다. 태양의 눈에 밟혀 구름 속에서 신음하던 날과 바다를 좋아하지만, 바다를 겉으로만 사랑했던 날에 대한 얘기, 그 행동에 관한 얘기를 어머니께 들려드리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