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총선에서 처음 도입된 1인2투표제에 따라 유권자들이 각각 후보와 정당을 찍은 투표용지를 두 개의 투표함에 한 장씩 나눠 넣고 있다. 주류(主流)가 바뀌고 있다. 2002년 대통령선거를 기점으로 거세게 불고 있는 우리 사회의 ‘주류 교체 열풍’은 17대 총선에서 또다시 확인됐다. 열린우리당이 과반 의석에 근접한 총선 결과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전후(戰後) 50여년간 우리 사회의 이념적 정서적 주체세력임을 자부했던 전전(戰前)세대가 역사의 무대 뒤편으로 떠나고 전후세대가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전전세대가 전쟁의 폐허 속에서 경제를 일으킨 ‘산업화-경제개발 세대’라면 전후세대는 비교적 풍요로운 경제여건 속에서 권위주의 체제를 무너뜨리는 데 앞장선 ‘민주화세대'다. 2002년 대선은 두 세대간의 치열한 대결이었다. 50대이면서도 ‘386’의 정신을 갖고 있는 노무현(盧武鉉) 후보의 승리는 이미 우리 사회의 ‘파워 시프트’(권력 이동)를 예고한 상징적 사건이었다. 17대 총선은 2002년 대선의 ‘연장전’이나 다름없었다. 노 대통령에 대한 야3당의 탄핵 가결로 총선이 대선과 같은 양상으로 전개됐고 ‘찬탄(贊彈)’과 ‘반탄(反彈)’으로 갈려 세대간 격돌이 다시 벌어졌다.총선 결과가 열린우리당이 호남-충청 등 서부벨트를, 한나라당이 영남-강원 등 동부벨트를 석권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이처럼 총선 결과가 지난 대선과 유사한 양상으로 나타난 것은 ‘친노(親盧)-반노(反盧)’ 대결구도가 재연됐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개혁과 보수가 노 대통령을 사이에 두고 갈렸다. 다만 호남과 보수적인 영남의 지역정치 의식이 3김(金) 시대의 맹목적인 지역감정과는 달리 친노-반노라는 전선을 따라 대체하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통계청의 국민 연령별 통계수치도 시대의 변화를 확연히 보여주고 있다. 20대 이상 성인 3265만여명 중 6·25전쟁을 경험한 50대 이상은 29.0%에 불과한 반면 전쟁 이후 태어난 20∼40대 연령층이 71.0%를 차지하고 있다.전후세대는 정치적 성향이나 사고의 틀에서 전전세대와는 확연히 다르다. 우선 이들은 지난 50여년간 기성세대의 사고의 틀을 규정해 온 냉전의식으로부터 자유롭다. 특히 30, 40대의 경우 70년대와 80년대의 정치적 격동기를 거치면서 권위주의체제에 대한 저항의식으로 무장한 채 사회변혁의 주체로 참여했다. 이들은 보수와 우파 일색의 이념적 스펙트럼을 깨고 44년 만에 다시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을 성사시키는 산파역을 맡았다. 정치권 외곽에만 머물렀던 여성들이 총선을 통해 전면에 부상한 것도 유교적 권위주의에 익숙했던 전전세대의 틀 속에서는 어려웠다.정치권에도 큰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교섭단체 구성에 실패한 민주당 내에서는 당장 ‘개혁민주세력 통합론’을 매개로 열린우리당과의 합당론이 다시 불거져 나올 가능성이 크다. 열린우리당이 야당과의 대화보다는 개혁드라이브를 걸 경우 한나라당도 무소속 영입과 함께 자민련과의 연대 또는 ‘개혁적 보수 연대’를 내걸고 민주당 일부 세력까지 포괄하는 ‘역(逆) 정계개편’을 시도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그러나 당장 정당간 울타리를 허무는 완전한 의미의 정계개편보다는 일단 한나라당과 민주당 자민련이 진로를 둘러싼 내부 갈등과 정비 과정을 거친 뒤 각 정파간 다음 대선을 염두에 둔 합종연횡이 벌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보다 설득력 있게 나오고 있다. 전후세대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은 지역주의와 3김식 권위주의에 물들었던 정치판에 새 패러다임을 만들어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안티’와 ‘저항의식’으로 단련된 전후세대 앞에는 바뀐 새 정치문화를 만들어 내고 사회통합과 갈등 해소에도 주력해야 하는 까다로운 과제가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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