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권은 글로벌화, 대학가는 미래개혁을 현실화 필요?
국민행복기금과 반갑등록금 정책에 정작 혜택 받는 주체는 다름아닌 금융권과 대학교들이다.
여기에서 국민들의 혈세로 이루어지는 보전되는 그 큰 금액을 받는 곳인 금융권과 대학들은
혈세를 아무 꺼리낌 없이 받기만 하면 과연 대한민국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일까? 하고
스스로 자문하고 돌이켜봐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배가 앞으로 나아감에 있어서 각 기간과 모든 국민들은 하루 하루
발전적으로 변화해 나아가야만 할 것인데, 특히 금번의 정책에 혜택자가 될 금융권과 대학
들은 어떻게 변화해야만 하는가?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 금융권은 국외에서 이익을 벌어 들이는 부분은 거의 없이 국내에서 국민들로
부터 금융 이윤을 거둬들이고 있을 뿐이다. 그 수준 높은 인재들이 모여서 세계 경쟁력을
발휘해서 벌어 들이는 선진국과는 달리 너무 안이하게 내국 국민들에게서만 이익을 가져
갈 뿐이라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글로벌 시대에서는 특히 도태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FTA를 그냥 우습게 넘기지 말아야 할 것이다. 경쟁력이 있고 조건이 좋은 외국계 은행이
들어 와서 흉내내어 국내에서 이익을 퍼 가버린다면 이익 보다는 손해가 극심하여 국가력
자체가 흔들리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SNS에서 서울 시민 중에 젊은 분이 말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SNS 중 서울 시민 :"요즘 정부정책때문에 말들이 많다. 그중에서 국민행복기금과 반값등록금 정책에 대해 나는 다른 관점으로 보고 있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는 곳이 하나도 없어서 한번 정리해본다.
국민행복기금은 대출금을 장기 연체하고 있는 저신용자에게 채무의 50%를 정부가 대신 갚아준다는 정책인데, 이걸 가지고 국민들은 모럴해저드니 공정성이니 서로 싸우고 있다. 내 생각은 정작 문제제기가 되어야 할 금융권에 대해서는 아무말도 없는 것이 이상하다. 이 정책은 장기연체로 신용도가 낮아 대출금회수가 어려운 사람들의 빚을 정부가 대신 갚아줌으로서 결국 금융회사의 리스크를 줄여주는 정책이다. 결국 이것은 금융기업이 회수하기 어려운 대출금을 정부가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해주는 정책인데 국민들은 이걸 가지고 서로 싸우고들있다. 이걸 지켜보는 대형 은행들은 그냥 웃으며 지켜보고 있지 않을까 싶다.
둘째로, 반값등록금 정책 역시 마찬가지이다. 지금까지 거의 모든 지원정책에서 나온 결과인데, 정부지원금이 늘면 그만큼 단체는 가격을 올린다. 즉, 지원금을 소비자가 혜택 받는 것이 아니라 단체가 받게 되는 것. 예를 들자면 유치원비를 지원해준다고 하니 지원금만큼 원비를 올리는 일이나, FTA관세가 인하 되었다고 하니 그 가격만큼 유통업자들이 판매가를 올린 것과 같은 논리이다. 그런 이유로 만약 등록금을 50%로 정부에서 지원해준다고 해도 대학은 반대로 200%로 인상해서 결국 학생이 내는 돈은 크게 체감되지 않을 수준에서 그칠 가능성을 점쳐본다.
즉, 위 사례에서의 핵심은 정부가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이 아니라 프로세스를 개선하는 것이 중요함을 말한다. 은행에 현금을 퍼주지말고 연체이율을 낮추고 신용도기준을 완화하는 것이 효과적이며, 대학등록금을 일괄 인하하는 것 보다 대학재정에 대한 철저한 감사와 개선을 해서 현 자금이 효율적으로 운용되는지 감시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본질은 금융재벌과 사학재벌의 퍼주기인데 정부와 언론은 전혀 다른 면만 말하고 있다.
이런 것을 지적하는 언론이 없다. 다들 그냥 국민들끼리 싸움만 붙이고 구경하고 있는 형국이다." 라고 적고 있다.
이와 같이 느끼는 국민이 있다는 것은 국가 정책이 시행되었을 때, 관련 기관들은 시간만
지나가기를 바래서는 안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정말 우리 대한민국의 금융권과 대학권은 어느 기관보다도 더욱 변화해야만 할 것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국민 모두가 경제적인 안정성 없이 행복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결론적으로 국민행복기금으로부터는 은행권이 변화를 주체적으로 기해야 할 것
이며, 반값 등록금에 대한 국민이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부분에서 미래를
설계 하는 등록금을 현실화 해 나아가는 개혁을 실천해야하는 주체가 됨을 자각해 주기를
바라마지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