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평 규모에 5000여 송이의 꽃 만발
해탈의 통찰과 서동·선화의 애절한 마음도 만나
19일 여름 한낮의 폭염이 쏟아지던 날, 궁남지는 만개한 연꽃으로 가득했다. 넓은 대지에 끝이 보이지 않는 연잎의 초록들이 질리도록 펼쳐있고, 그 위로 솟은 연꽃들은 형형색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더위기 기승을 부리는 8월은 연꽃이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뽐내는 찰나(刹那)의 순간이다. 그래서 이 시기에 이곳은 사람들의 발길로 북새통을 이룬다.
그러나 본질에서 궁남지는 관광지라기보다 기원의 장소에 더 가깝다. 연꽃이 부처의 깨달음에 깊이 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을 찾은 이들 모두 연꽃 하나하나에 해탈(解脫)을 염원하는 속인(俗人)의 마음을 담는다. 속세의 지친 마음과 번뇌를 잠시 놓고 가는 ‘비움’의 깨달음도 찾는다. 따라서 이곳은 육체의 눈보다 마음의 눈이 열리는 신비의 공간이다.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우침을 얻어 부처가 된 석가모니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얻게 될까. 서둘러 연꽃 속으로 들어갔다.
서동왕자와 선화공주
아련한 사랑의 장소
때마침 부여 연꽃축제가 열린 기간이었다. 휴가철과 방학이 시작되며 꾀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았다. 주차장은 이미 만원이었다. 어렵사리 주차를 마치고 궁남지로 길에는 어른 키만 한 해바라기가 활짝 펴 있었다. 붉은 기운이 감도는 원색에 가까운 짙은 노랑의 기운은 강렬했다. 해바라기의 얼굴은 지름이 30cm를 훌쩍 넘을 정도로 화사했다. 해바라기는 궁남지 외곽을 따라 넉넉히 심어져 있었다. 꽃잎에 쏟아진 햇살은 산산이 부서져 눈부신 황금조명으로 산화한다. 황금의 빛은 사방으로 퍼지며 여름 태양의 소식을 천지에 전한다. 그 빛을 머금고 만개하는 게 바로 연꽃이다. 그래서 이곳 궁남지의 아름다움은 해바라기에서 시작한다. 한 녀석은 하늘로 높이 고개를 들고 다른 녀석은 물 밑으로 뿌리를 내려 각자의 방식대로 삶을 살지만, 결국 같은 공간에서 하나의 순환적 삶으로 엮인다.
해바라기를 따라 걸으니 곧바로 궁남지 입구가 나왔다. 입구에는 서동왕자와 선화공주의 모형이 사람들을 환영한다. 이들 모형의 모티브는 사랑이다. 어느 날 서동은 왕의 밀명을 받고 서라벌 정탐에 나섰다가 선화공주에 마음을 뺏긴다.
공주를 얻기 위해 서동은 아이들에게 ‘서동요’를 부르게 했다. 서동을 밤마다 안고 잔다는 노래 내용 때문에 결국 공주는 궁에서 쫓겨났고 서동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이후 왕위에 오른 서동은 20리 바깥에서 물을 끌어와 어머니가 살았던 궁 남쪽에 현재의 궁남지를 만들게 된다. 궁남지 중심에 자리한 포룡정에는 서동이 선화를 사모해 지은 ‘서동요’가 걸려있다.
백제가 멸망한 지 1300여년이 넘었음에도 아득히 오래전 벌어진 남녀간 애틋한 정이 묵힌 사랑으로 잊히지 않고 궁남지 곳곳에 맺혀있었다. 사랑은 기억에 남고, 기억은 공간에 남는 것이다. 그 공간을 거니는 젊은 연인에게도 서동과 선화의 모습이 담겨있다. 사랑과 기억, 공간의 관계를 살펴보자니, 마음 한쪽이 아련해진다. 인스턴트 음식처럼 삶의 공간이 쉽게 변형되고 사라지는 오늘날 반세기도 못 버틸 우리의 기억과 사랑이 가련해지는 순간이었다.
전설의 ‘오가연’도 활짝
서동과 선화 뒤로는 총 10만여평에 달하는 넓은 대지와 아기자기한 연못, 그 위를 덮은 무성한 연꽃들이 장관을 이룬다. 무엇보다 궁남지의 미(美)는 인공적이지 않게 자연스레 배열된 연못에 있다. 중앙 연못을 비롯해 주위의 크고 작은 연못들 모두 동그랗거나 네모 반듯하게 꾸며지지 않았다. 연못을 따라 뻗은 길도 방향성이 없이 구불구불 휘어 있어 마치 미로를 연상케 한다.
이곳에 심어진 연꽃들은 매우 다양하고 규모도 크다. 황금연을 비롯해 가시연꽃, 홍련과 백련, 염양천 등 50여종에 이르는 다양한 연꽃이 5000송이 이상 심어졌다. 게다가 쉽게 보기 어려운 빅토리아연과 전설의 꽃으로 불리는 오가연꽃도 볼 수 있다.
넓은 대지에도 불구하고 궁남지의 공간은 다소 답답했다. 원형으로 넓게 퍼진 연잎이 턱까지 올라와 시야를 가렸기 때문이다. 연꽃이 솟아오른 높이 만큼 하늘이 낮아진 탓도 있었다.
쉴 새 없이 뻗은 연꽃 다발 사이사이에는 길게 늘어진 다양한 사람의 무리로 가득하다. 백일장에 참여한 아이들이 연신 붓질을 하며 연꽃을 화폭에 담아낸다. 이 순간 하나의 연꽃이 아이들의 눈과 손을 통해 천차만별의 모습으로 바뀐다. ‘사람의 수만큼 세상의 수가 있다’는 말을 절감하게 된다.
아이들의 눈 끝을 쫓아 연꽃과 주위를 둘러보니 무척이나 조화로운 색채들로 가득했다. 연잎의 펑퍼짐하고 둔탁한 녹색은 낮게 깔렸고, 그 위로 듬성듬성 박힌 단색의 연꽃들은 밤하늘의 별처럼 빛났다. 연못 샛길로 길게 심어진 원추리의 주홍빛은 수줍은 여인의 볼처럼 내 마음을 흩트려 놨다. 곳곳에 자리한 능수버들의 흔들림에 따라 반짝이는 햇살은 눈 부셨다. 만일 그림에 재주가 있다면, 당장에라도 팔레트를 열고 순간의 빛을 잡아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궁남지 한편에는 떠들썩한 한 무리의 중년 남녀가 모여 있었다. 부여의 연꽃 재배기술을 견학하기 위해 멀리 강원도 고성군에서 찾아온 이들이었다. 마침 설명해 주는 관계자도 있어 연꽃에 대해 배울 겸 잠시 동행했다. 중앙 연못의 포룡정을 향하는 내내 연꽃에 대한 집요한 질문이 이어졌다. 궁남지 구석구석을 허투루 지나는 일이 없었다. 아이들에게 연꽃이 심미적 대상이었다면, 이들에게는 삶을 유지해야 하는 절실한 방편이었다.
연꽃 향이 묻어 있는 포룡정
포룡정은 궁남지 중앙 연못의 한가운데 자리한다. 연못은 깊고 넓다. 길고 고풍스런 구름다리를 건너면 포룡정에 다다른다. 연잎 향이 사방에서 불어와 은은함이 더해진다. 더위에 지친 사람들의 담소가 끊이지 않는다. 파란 하늘이 연못에 비쳐 산란하는 이유인지 포룡정의 한낮은 다른 곳보다 밝다. 그래서 쉬는 기분도 더 상쾌하다. 포룡정에 앉아 무심코 연꽃을 바라보니 최근에 본 ‘연잎이 물에 젖지 않는 까닭’이란 기사가 떠올랐다. 현미경으로 연잎을 보니 미세한 나노돌기와 표면을 코팅하는 왁스 성분이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었다. 이 같은 성질을 산업에 응용하면 돈이 된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속세의 번뇌를 벗어나 ‘물에 젖지 않는 연꽃처럼’ 살아야 한다는 고대 불교 경전인 숫타니파타의 통찰이 무색해지는 시대다. 과연 오늘날 시대는 진보하고 있는 것일까. 고요한 정오의 포룡정은 연꽃을 통해 생각이 열리고 의식이 피어나는 사념의 공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