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 전대통령 생전 진술 거부...회고록 사후 공개 가능성도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22일 별세한 최규하 전 대통령은 ‘역사의 진실’에 대해 결국 입을 열지 않았다.‘10·26’에서 ‘12·12’와 ‘5·18’을 거쳐 대통령 하야에 이르는 격동의 정치상황을 놓고 지금까지도 숱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지만, 비밀의 열쇠를 쥔 최 전 대통령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침묵을 지켰다. ◆최단명 비운의 대통령 1976년 국무총리에 임명된 최 전 대통령은 1979년 10·26 사태 이후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선출된 뒤 신군부가 주도한 12·12사태 직후인 같은 달 21일 제10대 대통령에 올랐다. 그러나 1980년 5·18사태 이후 정국은 극도의 혼미상태에 빠져들었고, 최 전 대통령은 결국 그해 8월 15일 하야 성명을 내고 권좌에서 물러나 헌정사에 ‘최단명 대통령’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이에 따라 최 전 대통령은 신군부의 강압에 못 이겨 대통령 자리에서 쫓겨난 ‘불행한 시대의 대통령’이라는 평가가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신군부의 최대 피해자로 간주돼온 최 전 대통령은 그러나 당시 상황에 대해 ‘재임 중 사안’이라는 이유로 일체의 공개적 언급이나 진술을 거부해왔다. 1995년 12·12 및 5·18 사건을 수사하던 검찰이 최 전 대통령을 상대로 다각도의 조사로 ‘입 열기’를 시도했으나 결국은 실패했다. ◆침묵 둘러싸고 갖가지 의혹 최 전 대통령이 ‘집념’에 가까울 정도로 침묵을 지키면서 세간에는 갖가지 의혹이 떠돌았다. 특히 그가 신군부가 자행한 정권탈취 음모의 피해자가 아니라 오히려 신군부의 집권을 묵인 또는 방조했다는 추측이 적지 않았다. 이런 시각을 견지하는 이들은 그가 하야 성명을 발표하고 난 뒤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을 향해 ‘지지연설’을 한 점, 신군부 세력이 12·12사태 이후 대통령 간선제를 요구하자 개헌 일정을 대폭 늘려 잡은 점 등을 석연치 않은 대목으로 지적했다. 그러나 최 전 대통령의 별세로 ‘실체적 진실’은 역사의 미궁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다만 일각에서 최 전 대통령이 ‘회고록’을 남겨놓았을 가능성을 제기, 그 불씨를 남겼다. 일부 정치인들 사이에서 최 전 대통령이 거의 집필을 끝낸 뒤 자신의 사후에 공개토록 지시한 ‘회고록’이 존재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 것. 이에 대해 최 전 대통령 측은 “회고록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부인했다. 최흥순 전 비서실장은 일부 언론의 질문에 “회고록 같은 것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부인했다. 다만 최 실장은 그러나 “개인적 메모는 혹시 있을지 모르겠다”고 미묘한 여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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