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전 유의사항을 꼭 숙지하라. 그렇지 않으면 이 추운 겨울날 추위에 떨어야 할지도 모르니까". 혹자가 말한 이 사항을 유념하고 관람을 하러 간 ′델라구아다′는 그 전용극장에서부터 다른 일반 공연장과 사뭇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세종문화회관의 뒤편에 델라구아다를 위해 새로 신축한 건물은 깨끗한 갤러리의 인상을 풍겼고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의 복장 또한 클래식한 느낌보다는 캐주얼한 자유스러움이 묻어났다. 다들 외투를 입고 있지 않았는데 그 곳에 도착 후 조금 지나서야 세기의 공연을 위해 외투와 소지품은 개별 보관실에 맡겨야 하는 것을 알게되었다.
이런 좀 특이한 절차는 뮤지컬 퍼포먼스 ′델라구아다′에 대해 더욱 기대를 갖게 만들었다. 공연장 문이 열리고 관객 한사람 한사람이 줄을 지어 들어선 곳은 앉아서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좌석이라곤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사방이 어두컴컴한 네모난 공간에는 마치 독가스실의 마루타들처럼 그 무언가를 기다리는 관객들과 그 위를 덮은 커다란 흰종이 막 뿐이었다. 그러나 관객 각자는 마음속으로 굉장한 즐거움을 기다리고 있었고 그 순간 희미하게 비추던 조명마져 확 꺼지면서 본격적인 공연이 시작되었다.
위로 쳐져있던 흰색 막위로 섬광같은 그림자의 비행과 함께 물방울과 수십가지 색의 형광물질들이 천막위를 하나둘 씩 덮기 시작했다. 천천히 진행되던 흰색막 위의 그림자 공연이 차츰 빨라지면서 어느 순간 우주의 별들이 쏟아져 내린 것같은 숨막히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한쪽 천장을 뚫고 나온 배우가 관람하던 여성을 흰색막 위로 잡아끌어 올려버린다. 또다시 아래로 내려온 배우는 그 관객 여인의 스커트를 걷어올리며 장난을 치는데 이것을 보고 충격을 받을 필요는 없다. 같은 연기자들의 연출일 뿐. 그러면서 사방의 흰색막을 뚫고 나온 배우들과 그 위에 있던 형광물질과 물방울들이 순식간에 공연장으로 쏟아져 내리면서 그 어두컴컴하던 공간은 환상의 도가니로 바뀐다. 천장에 매달려 온갖 포즈를 취하는 배우들의 연기와 퍼포먼스는 이국적 느낌뿐 아니라 몽롱한 기분에 빠져들게 만들어 버려 관객 또한 배우로 만들어 버린다. 물세례를 받으며 펼치는 배우들의 현란한 동작은 아르헨티나의 열정을 그대로 잘 보여준다. 배우들의 합창과 공중연기를 마지막으로 끝나는 ′델라구아다′는 아쉬움에 남은 관객들과 함께 ′대한민국′을 마지막으로 한번 더 소리치면서 그 막을 내린다. 밖의 기온이 영상과 영하를 왔다 갔다 가운데에서도 공연 후의 열기는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80여분간을 스탠딩 공연으로 참여하지만 피곤함이나 지루함을 전혀 느낄 수 없는 ′델라구아다′는 브로드웨이의 현지 스태프와 출연진이 만들었고, 지난 19일부터는 한국배우들이 대거 참여해 공연을 펼치고 있다. 12월까지도 계속 진행될 이 공연은 ′오페라 유령′에서 도입했던 단계별 티켓 오픈 시스템을 도입 언제까지 공연될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공연을 마친 후에는 동남아 순회공연도 가질 예정"이라는 게 관계자의 말이다. 일반 좌석구분이나 티켓구분이 없는 델라구아다는 주말과 평일에만 가격 차이가 있을 뿐이다.(화·수 5만원, 금·토·일 6만원) 또, 공연의 성격과 맞게 공연 시간은 항상 밤이다.
아르헨티나의 억압된 상황을 극복하는 과정을 그리는 ′델라구아다′는 남미의 열정과 함께 추운 겨울날을 따뜻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권경희 kkh@krnews21.co.kr
- TA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