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친일파 후손이 조상의 재산을 보호해 달라며 재판을 청구했을 때 법원이 국민감정을 내세워 심판을 거부한 것은 부당하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법 민사20부(재판장 민일영 부장판사)는 지난 달 30일 김모(80.여)씨가 시할아버지인 친일파 이재극으로부터 물려받은 부동산을 돌려달라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소유권확인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1심의 각하판결은 부당하다”며 사건을 서울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일제시대에 반민족 행위를 한 사람들을 역사적으로 단죄해야 한다는 것에는 이론이 있을 수 없으나 국가가 친일파 후손의 재산권 보호를 거부하기 위해서는 헌법과 법률에 의한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며 “법적 장치 없이 막연하게 국민감정만 내세워 재판을 거부하는 것은 법치주의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원고가 이재극으로부터 상속한 부동산의 보존을 위해 재판을 청구한 이상 이재극이 반민족행위자인지, 혹은 그가 이 토지를 반민족행위로 얻은 것인지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국민의 평등한 재판청구권을 보장해야 할 책임있는 법원으로서는 원고의 청구에 대해 심판할 의무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재극은 조선 말기 문신으로 1905년 을사조약 체결시 왕실의 종친으로서 궁내 동정을 친일파에 제공하는 등 조약체결에 협조한 인물로 경술국치 이후 천황으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고 1919년에는 이왕직장관(李王職長官)에 임명됐다.
한편, 김씨는 96년 국가가 과거 이재극 소유로 자신이 물려받은 파주시 문산읍 도로 3 21㎡에 대해 보존등기를 마치자 이는 무효라며 소송을 냈으나 1심 재판부는“민족의 자주독립을 스스로 부정하고 일제에 협력한 자 및 그 상속인이 헌법수호 기관인 법원에 대해 반민족행위로 취득한 재산의 보호를 구하는 것은 정의에 어긋난다”며 소송을 각하했다.
지금까지 법원은 97년 친일파 이완용의 증손자가 1948년 농지개혁 때 토지관리인들이 차지한 땅을 돌려달라며 낸 소유권이전등기말소 청구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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