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어 이제는 세계인의 보물이 되어버린 한라산은 오늘도 어제처럼 그 자리에 서 있다. 청정한 푸른바다를 자신의 몸에 휘감고 망망대해를 발아래에 굽어보며 한민족의 기상처럼 의연히……. 한층 맵시를 뽐내고 있는 천혜의 자연경관, 식물의 보고인 제주에서도 그 심장부라 할 수 있는 한라산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나는 역시 행운아임이 분명하다고 생각하며 오늘도 한라산을 오른다. 원시림을 이루어가는 나무들이 철따라 옷을 갈아입기야 하지만 가을보다 더 고운 때가 또 있으랴. 늘 만나면서도 못내 그리워하는 연인들처럼 한라산 속에서 내 인생의 황금기를 다 보냈으면서도 한라산은 늘 내마음속에 그리움으로 앉아있다. -곁에 있어도 그대가 그립다- 던 어느 시인의 시구가 요새 새삼스레 가슴 절절이 와 닿는 건 나이가 들어가는 탓이 아닐 런지, 가을이면 나는 한라산에서도 특별히 가고 싶고 그리워하는 장소가 있다. 높은 가을 하늘아래에서 청량한 바람과 가을햇살에 몸을 맡기며 왕관능 바위에 앉아 하루 종일 머물고 싶어 하는 것이다. 수 만년의 숲을 이뤄온 광활한 구상나무 숲에 단풍과 고사목이 어우러진 사이사이로 서서히 동터오는 아침 햇살을 왕관능 바위위에서 맞이하는 감동은 가을 숲의 또 다른 경이로움으로 다가와 말로 다 표현 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이 벅차오른다. 한라산의 가을은 강렬하지 않고 은은하게 여러 가지 색상으로 물든다. 푸르른 구상나무 잎, 신갈나무의 갈색 잎, 팥배나무의 노란 잎, 마가목의 담홍색 잎과 단풍나무의 타는 듯한 붉은 잎, 참빗살나무의 붉은 열매가 조화롭게 어울려 한라산 일대를 물들게 한다. 다른 산과 달리 한라산에는 여러 가지 나무수종들이 혼합되어 있어 아름답고 고운 색상으로 나뭇잎이 물들어 더욱 아름다운 가을을 연출한다. 특히 한라산의 제1경인 영실계곡에는 애달픈 전설이 함께 깃든 기암괴석의 전시장을 이루는데, 장엄하게 늘어선 오백여개의 기암괴석들이 하늘을 향해 솟아있는 바위사이로 은은하게 물든 단풍들이 함께 어우러져 마치 용암이라도 흐르는 듯한 절경을 이루어 낸다. 이뿐이랴! 삼각봉과 용진각계곡, Y계곡을 타고 흘러내리는 단풍은 한라산의 단풍 중에서도 백미로 꼽지 않을 수 없다. 단풍색의 강렬함으로는 단연 으뜸이라 할 수 있는데, 관음사 코스로 가을등반을 한다면 그 맛을 음미할 수가 있다. 부지런히 산을 오르다가 몸에서 흥건한 땀 냄새가 배어남을 문득 느낄 때, 살아있음에 대한 감동, 건강한 육신을 지녔음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게 되고 내게 주어진 모든 것들에 대한 고마움과 삶에 대한 겸허한 자세를 추스르게 되는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한라산 속에서 일하면서도 늘 산이 고파서 카메라 하나 둘러메고 온종일 산 속을 헤집고 다녀야 갈증이 풀리는 건 아마도 한라산이 내게 주는 이러한 가르침들을 다시 온몸으로 받아드리고픈 갈망이지 싶다. 되돌아보면 산 살이 30년이 넘었으니 온 산 구석구석 내 발길 닿지 아니한 곳이 없고, 추억이 어리지 아니한 곳이 없으니, 내 한라산 사랑이 연인들의 사랑보다 못하다고 누가 말할까. 가을은 한라산을 치장하는 것만이 아니라 산 사나이의 가슴에 시인의 감성 또한 불어 넣나 보다. 한라산을 향한 내 사랑이 새삼스럽게 올 가을 다시 단풍처럼 불이 붙는다.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한라산국립공원보호관리부 관음사안내소

10월의 한라산

참빗살나무 열매와 오름들

왕관바위 동쪽 구상나무지대

계곡주변의 단풍

오백장군 바위

영실기암

참빗살나무 열매

비목나무 단풍

단풍나무
- TA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