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교체 과정에서 조직개편 논란이 가열되면서 제자리를 찾지못한 정부 부처들이 이쪽 저쪽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된 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새 정권과 현 정권의 상반된 정책기조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된 공무원들은 애매하거나 민감한 사안에 대해 방향을 결정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 하고 있으며 향후 부처의 운명과 공무원 개인의 자리에 어떤 바람이 불지에만 관심을 갖고 있다.정책의 부재 상태가 지속되면서 국민들도 향후 정책의 향방이 어떻게 정해질 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재경부 "나서면 좋을 것 없다"31일 정부 경제부처에 따르면 재정경제부는 불과 일주일전 주식시장이 크게 흔들렸을 때 시장의 불안심리 해소를 위해 국민연금의 주식투자를 조기집행하는 등 연기금을 동원한다고 발표했지만 정작 지난 30일 코스피 지수 1천600선이 무너지자 당황하고 있다.지난 23일 긴급 금융정책협의회를 연데 이어 24일에는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관리공단, 사학연금 등을 소집해 의견을 듣는 등 호기있게 움직였지만 한나라당 이한구 정책위의장이 바로 이날 "연기금 동원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한 데 이어 연기금에서도 탐탁지않은 반응을 보이자 재경부만 입장이 난처해졌다.재경부 관계자는 "재경부가 연기금을 동원해 주식시장을 부양한다는 얘기는 한 바 없다"면서 "연기금은 어디까지나 그들 스스로의 판단과 책임에 따라 주식투자를 하는 것이며 이 같은 입장은 달라진 것이 아니다"면서 한발 물러섰다.재경부는 하나은행에 대한 법인세 과세문제에 대해서도 5개월째 검토만 하고 있다. 국세청은 하나은행이 2002년 말 적자상태였던 서울은행과 합병한 이후 서울은행의 결손을 공제받는 과정에서 적자법인에 대해 법인세를 면제해주는 제도를 이용해 편법으로 세금을 줄였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관련 세법을 어겼는 지에 대한 유권해석을 지난해 9월 초 재정경제부에 의뢰한 바 있으나 5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답을 주지 않고 있다.재경부 관계자는 '언제쯤 결과가 나올지', '왜 유권해석이 늦어지는지' 등에 대한 질문에 "검토중"이라는 기계적인 답변만 반복하고 있다.◇ 종부세도 눈치보기 재정경제부와 국세청은 지난해 12월 초 각각의 홈페이지를 통해 종합부동산세 관련 쟁점을 퀴즈 형식으로 풀어보는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했지만 결과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설문조사는 당시 종부세 신고기간을 맞아 국민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관련 여론을 수렴하는 등 종부세에 대한 홍보 차원에서 실시됐다.설문은 현행 보유세 강화, 거래세 완화 정책, 우리나라의 보유세 부담수준, 과세기준금액, 종부세부담 증가율, 종부세의 사용 용도, 1세대 1주택자 종부세 면제 등에 대한 여론을 수렴하기 위한 문항들로 이뤄졌고 여느 때와 달리 조사 기간 중에는 중간 결과를 보지 못하도록 비공개로 진행했다.조사 결과는 종부세에 대한 일반국민의 인식이 정부와 큰 괴리를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나온 것으로 알려졌지만 재경부는 관련 보도자료를 차일피일 미루며 내놓지 않고 있다.지난해 대선 직전 홈페이지에 종부세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5건의 시리즈 글을 올렸던 당시와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이에 대해 재경부가 참여정부 부동산 세제의 핵심인 종부세에 대해 우호적인 설문조사 결과를 내놓을 경우 새 정권으로부터 찍힐까봐 눈치보기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농림부는 '쌀 목표가'로 속앓이농림부는 쌀 목표가격을 동결하는 문제 때문에 현 정부와 새 정부 사이에서 '속앓이'를 하고 있다. 쌀 목표가는 정부가 농가에 지급하는 쌀소득보전직불금의 기준이 되는 쌀 값 수준으로 정부는 현재 그 해 쌀 산지가격이 목표가보다 낮으면 그 차이의 85%를 현금으로 보전해주고 있다.이 목표가는 최근 5년간 산지 쌀 값 평균에 따라 결정되는 것으로 작년말 농림부는 2008~2010년 쌀 목표가격을 80㎏당 16만1천원대로 2005~2007년 목표가보다 5% 정도 낮추는 변경안을 제출한 바 있다.그러나 이달 초 인수위가 이명박 당선인의 선거 공약에 따라 '5년 목표가 동결'이 필요하다고 농림부를 압박했고, 농림부는 최대 '2년 동결'까지는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전달했다.결국 새 정부측 요구와 총선 등의 정치적 요소가 맞물려 지난 29일 국회 농해수위 의원들은 만장일치로 '5년 동결안'을 결의했고, 본회의 통과가 확실시되고 있다.상임위 통과 직전까지 임상규 농림부 장관을 비롯한 농림부 실무진들은 장기적으로 쌀 개방을 앞둔 벼농사 구조조정 필요성 등을 고려할 때 목표가 장기 동결이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라는 의견을 피력했으나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농림부는 새만금 사업 계획 수립 과정에서도 주변으로 밀려났다. 지난해 발표된 당초 새만금간척지 이용계획대로 '농지 70%-여타 산업 30%' 비율로 추진된다면 농림부가 주도권을 가질 수 있지만, 인수위 새만금 태스크포스는 농지 비율을 30%로 대폭 줄이고 연일 대대적 산업.관광 개발 구상을 내놓고 있어 농림부의 발언권이 없어진 상태다.식량안보 차원의 농지 확보 필요성, 농지관리기금에서 출자된 공사비 문제 등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현재 농림부 안에서만 맴돌고 있다.◇ 산자부 균특법 개정 포기산업자원부는 지난해 정기국회에서 끝내 처리되지 못한 국가균형 특별법(균특법) 개정안의 통과노력을 사실상 중단했다. 이 법은 전국 기초 지방자치단체를 발전단계에 따라 4단계로 나눠 지원과 규제를 차등화하는 내용의 근거법이 될 예정이었다.이 개정법안은 수도권 지자체는 발전수준과 무관하게 발전등급을 올려 사실상 불이익을 주도록 하는 참여정부 색채가 짙은 법안으로, 수도권은 물론 영남권 지자체와 이 지역 출신 의원들의 반대에 부딪혀 본회의는 커녕 상임위 통과 자체가 불가능한데다 통과되어도 시행할 만한 여건이 되지 않는다는 게 산자부의 판단이다.이명박 당선인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이미 참여정부의 2단계 균형발전계획과 달리, 전국을 2개의 특별 경제권을 포함한 7개 광역 경제권으로 나눠 발전계획을 추진하되 수도권을 일방적으로 규제하는 정책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쪽으로 정책방향을 정리했기 때문이다.이번 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17대 국회 임기만료와 함께 법안은 자동 폐기될 전망이며 산자부는 추후에 입법을 시도하지 않을 계획이다.◇ 공정위는 출총제 고민공정위는 그동안 출자총액제한제도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재벌규제의 필요성 때문에 이 제도를 유지해왔으나, 인수위 방침에 따라 이를 폐지하기로 했다.공정위는 지금도 `대안없는 폐지'는 안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규제완화'를 최우선 목표로 추진하는 새 정부의 방침을 감안하면 대안이 제대로 마련될 수 있을 지 불투명한 상황이다.이처럼 인수위와 공정위가 재벌규제에 대해 `시각차'를 보이면서 공정위는 출총제 폐지와 대안 마련 작업에 제대로 착수하지도 못한 채 인수위의 눈치를 보면서 추이를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공정위 관계자는 "인수위 쪽에서는 출총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것만 정했을 뿐 이후 후속조치에 대해서는 아무런 얘기가 없다"면서 "그쪽에서 뭔가 얘기를 해줘야 후속작업에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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