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경내에 위치한 육상궁(사적 149호)이 지난달 24일부터 개방돼 역사의 베일을 벗었다. 육상궁은 1968년 1·21 사태 이후 폐쇄된 이래 10·26사건의 안가(安家)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영광과 애환의 역사를 가진 사당이다.
′기를 육(毓)′에 ′복 상(祥)′의 ′육상궁(毓祥宮,숙빈묘)′은 영조원년(1725) 어머니 숙빈 최씨에 대한 각별한 보은의 정에서 비롯된 사당이다. 잠저에 사우를 만드는 것이 불가, 영조 원년(1725) 12월에 경복궁 북쪽(현 위치)에다 건립됐고, 정조실록에 의하면 영조의 어진도 봉안하였다하여 봉안각으로 추정된다.
육상궁은 고종 19년(1882) 화재에 소실된 것을 동 20년(1753)에 중건이후, 1908년과 1929년 서울주변에 흩어진 여섯 후궁의 사친묘가 모셔져 칠궁(육상궁, 연호궁, 덕안궁, 경우궁, 선희궁, 대빈궁, 저경궁)이라 한다.
칠궁의 면적은 25,791㎡(7,815평)에 육상궁 등 묘궁 5개동을 포함한 건물 총 24동이 278평 가량이다. 경내 구조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신 종묘와 비슷해 ′미니종묘′로도 불리 우는데, 단아한 건물배치와 조경 때문에 대표적인 전통건축물로 손꼽히고 있다. 영조는 건물의 기둥과 문, 모양 등을 종묘(宗廟)와 같도록 명하였으나, 후궁의 사당을 역대 임금의 신위를 모신 종묘와 똑같이 지을 수 없어 신하들이 고심 끝에 집터를 평지보다 더 깍아내려 낮게하고 건축물을 종묘의 치수대로 지었다. 이에 왕은 실망감에 호통을 친 후, 신주를 종묘에 모시려하자 승지가 왕의 신발 뒷꿈치를 입으로 물며 만류하여 영조가 신주를 앉고 혼자 눈물을 흘렸다고 전한다.
정문을 들어서면 남·북축에 맞춘 2채의 재실이 있고, 그 뒤로는 동에서부터 남향한 육상궁, 연호궁, 덕안궁, 경우궁, 선희궁, 대빈궁, 저경궁이 있는데 연호궁과 덕안궁 사이에 있는 냉천과 냉천정, 그리고 주변의 뜰은 전통적인 한국정원의 일면을 보여주며 주위 담장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시민들에게 개방을 하기 위해 금년 1월부터 11월 개방 전까지 보수하였다는 것이 담당기관 관계자의 말이다. 일반관람은 4·5·9·10월 매주 금·토요일에 가능하며, 단체관람은 월∼토요일(연중 가능), 특별관람은 1·7월 화∼토요일에 청와대 관람과 연계하여 시간대별 안내되며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이선영 기자>sunyoung@krnews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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