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마디」로 등단한 이후, 지속적으로 이 시대에 소설을 쓴다는 것과 삶이 지닌 본질적인 관계에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해온 소설가 구효서의 다섯번째 소설집『아침 깜짝 물결무늬 풍뎅이』가 세계사에서 출간되었다. 이번 소설집에는 모두 11
편의 단편들이 실려 있다.
등단 이후 여러 편의 단편을 발표해오던 구효서는 1991년 장편『늪을 건너는 법』을 출간함으로써 1990년대의 <문제적 작가>의 반열에 합류했다. 두번째 소설 집『확성기가 있었고 저격병이 있었다』(1993)에서는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정보 메커니즘이 가하는 유형무형의 폭력을 비판하고, 정보 사회에서 강요되는 획일적인 일상성에 절망을 피력한 바 있다. 특히 세번째 소설집인 『깡통따개가 없는 마을』(1995)과 네번째 소설집『도라지꽃 누님』(1999)에서는 현실과 삶의 문제를 똑바로 직시하여 특유의 몽환적이면서도 우의적인 표현기법으로 그려낸 바 있다.
이번에 출간된 소설집『아침 깜짝 물결무늬 풍뎅이』는 이제까지 구효서가 추구해온 작품들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인다. 물론 그의 작품 속에 나오는 주인공 대부분이 소설가라거나, 그 주인공을 통해 현시대에서 소설 쓰기의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하는 고뇌의 흔적은 여전하지만, 사회의 부조리와 문제점을 다루는 데 큰 비중을 두지는 않는다. 또한 소재의 선택도 현재 주목받는 소설들이 그러하듯 크게 모나거나 배돌지 않고 일상의 소소한 사건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이전의 작품이 가지고 있던 특성과는 뚜렷한 변화를 보이고 있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이러한 변화 원인을 <작가 후기>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한때는 소설 쓰는 일을 분석과 탐구로 여긴 적도 있었다. 그러나 알리거나 최소한의 공감을 얻어내기 위해 소설을 쓰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삶 자체의 눈물겨운 풍경들에 무작정 발끝을 채여 덩달아 자꾸 눈시울이 뜨거워졌을망정, 생의 비의를 파헤치려는 치열성 따위에는 점차 미련이 없어졌다>.
그렇다고 그의 작품들이 시대상을 완전히 배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완악한 언어와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로 표현되던 부분들이 상당 부분 마모되어 있고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담아 내거나, 실소를 터뜨릴 정도의 풍유로 에돌아 그려지고 있다.
예를 들면「흔적」은 6·25전쟁이라는 무거운 배경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배경일 뿐 주제는 아니다. 그저 문설주의 <흔적>을 통한 향수나 희미한 <옛사랑>을 추억하는 배경의 하나로 그려지고 있을 뿐이다. 또한 이번 소설집에서는 사회의 부조리를 폭로하거나 사건의 복선을 위해 중요 모티프로 등장하던 나무나 새, 소리 등은 무거운 상징성의 철갑을 벗어버리고 자연스럽게 그려진다.「아침 깜짝 물결무늬 풍뎅이」「더 먼 곳에서 돌아오는 여자」「가을비」등의 작품에서는 나무가,「사운드 오브 사일런스」「정주」등에서는 소리가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상징물로 나온다. 그러나 이 상징물들에는 개인의 마음이나 자연의 상징성을 드러내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다. 이 책의 해설에서 숭실대 불문과 이재룡 교수는, 이 상징물은 의도된 연출이 아니라 <자연과 자연스러움>이 녹아 있으며, 이제 구효서의 관심은 눈에 보이지 않는 권력과 제도에 대한 공격에서 개개인의 상처로 조금씩 옮겨졌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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