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실험소설 <무익조>를 각색하다가 희곡을 쓰기 시작했다는 동기 때문에 이어령의 희곡들은 마치 ‘외도’의 결과물인 듯 보인다. 하지만 자신이 당당히 말하듯 “달리는 말만 놓고 어떤 말이라도 문학 작품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이어령으로, 그는 평론, 에세이를 비롯하여 시와 소설, 논문 그리고 한국 최초의 70밀리 영화 춘향전의 시나리오에 걸쳐 다양한 글을 써왔다.‘외도’치고는 상당히 화려한 면면을 보여주고 있는 이 희곡집의 작품들만 봐도 안이한 생각은 금세 날아가 버린다.
아직도 대학 연극반에서 곧잘 공연하는 표제작 <기적을 파는 백화점>에서 지식을 가면으로, 꿈을 풍선으로, 시간을 테이프로 재치 있게 표현하는가 하면, 어떤 때는 토속적인 느낌을 한껏 살리면서도 저자의 모든 저작에 흐르는, 현대 문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드러난다. 정진수 연출로 공연된 <사자와의 경주> <당신들은 내리지 않는 역> 그리고 실험극장에서 공연한 <세 번은 짧게, 세 번은 길게> 등 이 책에 실린 희곡들은 거의 모두 연극화되었다. <세 번은 짧게, 세 번은 길게>는 이후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기적을 파는 백화점>
기적을 파는 백화점에는 지식의 가면을 팔고 있는 지성, 시간의 테이프를 파는 김시희, 꿈을 파는 허몽녀가 있다. 이들은 지식과 시간과 꿈을 돈으로 살 수 있는 ‘기적’을 베풀지만 정작 이 물건을 사간 사람들은......
<사자와의 경주>
자신의 남편에게는 아무 신경도 쓰지 않는 아내는 하루종일 전화기에만 붙어서 통화를 하고 있다. 아내의 주의를 끌려고 아파트 계단에서 굴러떨어지기까지 하는 남편. 이들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세 번은 짧게 세 번은 길게>
우연적인 실수로 인해 남의 집에 들어가 갇히게 된 김종실. 하룻밤 사이에 그는 행방불명자로 처리되고 점점 사건이 과장되어 버리는 바람에 이제는 나갈 수 있어도 나가지 못하게 된다......
<오! 나의 얼굴>
카메라 셔터 사고로 얼굴을 잃은 한 남자가 시골 풍경을 뒤에 세워놓고 사진을 찍는다. 하지만 얼마 후 사진에 얼굴이 안 찍히는 병은 전 세계적으로 퍼져 나가게 되는데......
<당신들은 내리지 않는 역>
일제 시대를 그리워하며 기차가 오지 않는 역을 지키는 늙은 역장과 기생 월매에게 모내리에 역이 다시 생긴다는 희소식이 들려온다. 과연 그들에게 옛날과 같은 영화가 찾아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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