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치기도 적극적인 날치기와 소극적인 날치기가 있다(?)”
비전과 대안을 제시하겠다던 17대 국회도 사실상 ‘기대이하’라는 평가다. 행정의 실정을 따지고 국민의 생활을 챙기는 ‘정책국회' ’민생국회‘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고 여야가 상대방을 무력화해 주도권을 잡는 데만 급급하다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국민들은 17대 국회 개원 이후 이념 공방, 4대개혁입법 등을 둘러싸고 대립각을 세워왔던 정치권이지만 정기국회에서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없지 않았다.새로운 정치문화를 선보이겠다는 신인들이 대거 등원한 데다 여야가 정쟁을 지양하고 이번 만큼은 깊이있는 국회상을 만들겠다고 약속한 바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민들의 이런 기대는 ‘역시나’로 끝나고 있다.특히 국가보안법폐지안 상정과 관련 법사위에서의 촌극은 실소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여야는 국보법 폐지안 법사위 재상정 문제로 다시 격돌했고, 여당 내부는‘연내처리 유보’방침으로 하루 종일 시끄러웠다.결코 실(失)만은 아니라는 열린우리당, ‘결사저지’라며 꿈쩍도 않는 한나라당. 국보법 논쟁은 현 정치권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지난 3일 4시 30분 속개된 법사위에서는 국보법 상정을 저지하려는 한나라당 의원들에게서 조차 감탄을 연발하게 하는 최재천 열린우리당 간사의 의사진행발언이 단연 압권이었다.한나라당의 지연전술에 맞서 초선답지 않은 힘있는 목소리로 “법안 상정 자체를 놓고 흥정하지 마라, 의사 진행권의 남용이다”며 “날치기도 적극적인 날치기와 소극적인 날치기가 있고, 살인에도 칼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굶겨서 죽일 수도 있는데, 상정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자동 폐기될 때까지 국보법을 굶어 죽이자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20 여분간 계속된 최의원의 발언이 끝나자 맞은편에 앉은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은 “한글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없는 내용과 다른 내용을 이렇게 포장될 수 있구나, 만원짜리 지폐를 보며 세종대왕께 경의를 표하게 한다”며 비아냥 섞인 농담을 건네 좌중을 웃음짓게 했다. 이와관련 시민 김모씨는 열린우리당의 법사위 간사인 최재천 의원의 발언에 대해 “언론을 의식해 튀어보고자 하는 의도된 언어 유희같아 듣기 민망했다”며 “진정 국민이 신뢰할 수 있고 국민을 어려워했다면 그렇듯 유치찬란한 표현으로 발언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진정성과 의도가 의심받고 있는 셈이다.이어 국가보안법 폐지안을 둘러싸고 여야가 재격돌한 지난 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도 최 의원은 단연 ‘튀는 초선의원’이었다. 한나라당 심재철(沈在哲) 의원이 “또 날치기하려는 것 아니냐”고 하자 최 의원이 “누가 또 헛소리하는 거야”라고 맞서 삽시간에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단초를 제공했다. 변호사 경력을 지닌 서울 성동구 지역의 초선 최재천 의원이란 인물의 말이란 게 이지경이다. 최근 최 간사는 한나라당의 열린우리당 이철우(李哲禹)의원의 ‘북한 조선노동당 입당 의혹' 논란과 관련 “교과서에 없는 관습헌법도 만들어 내는데 이것을 처벌하는지 지켜보자. 어떻게 현재까지 간첩이냐? 간첩은 대단히 무지한 말이다. 법률적으로 간첩은 기밀을 누설하거나 건네주는 사람이다. 이철우 의원이 단체 가입일지는 모르지만 국가 기밀을 누설하였나? 왜 간첩이라고 하나. 주성영, 박승환 의원이 똑같이 법을 하는 사람들인데 날조를 한다. 국가보안법 폐지 전선에 일사분란하고 결사항전 각오로 나설 수 있는 좋은 계기이다”는 말도 했다. 말의 내용은 비판과 투쟁적인 성격이 만이 존재할 뿐이다. 문제는 대화와 타협을 바탕으로 상생의 정치를 펼치겠다던 초선의 입에서 나온 말들이 모두 하나같이 독선과 자신의 생각만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실상을 따져보기에 앞서 자기편이 아니라고 여겨지는 쪽을 향해 온갖 야비한 폭언을 퍼부으며 아예 타도의 대상으로 삼는 초선들을 현 정권 들어 국민들은 번번이 보아왔다. 현 정권은 국보법폐지를 기필코 폐지하겠다는 입장이다. 국보법 폐지에는 우리 안보와 국민의 안보불안에 대한 성찰이 필수다. 최 의원 같이 자극적인 표현을 통해 그 작업을 주도한다면 국보법 해법은 물건너간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작업을 특정 정파, 특정 이념의 행동대원 같은 사람에게 맡길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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