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군에서는 지역의 충신인 백제의 성충, 흥수, 계백과 고려후기의 충신 이존오, 조선시대 선조때 선비 정택뢰, 인조때 문신 황일호 등 여섯명의 충신을 모신 사당 의열사가 부여정신의 맥을 잇고 있다.
의열사는 선조때 세워진 부여에서 가장 오래된 사우로 조선시대 부여현감이던 홍가신이 백제와 고려충신에 대한 기록을 발견하고 이고장 충신인 백제의 성충, 흥수, 계백과 고려후기의 충신 이존오를 위해 사당을 세우고 고을의 어른들과 제사를 모신 것이 그 시작으로 임금이 이를 가상히 여겨 의열사라는 현판을 하사하고 그 충정이 길이 이어지길 바랐던 곳이다.
그후, 조선 선조때 선비 정택뢰와 인조때 문신 황일호를 추가로 모셔 여섯명을 모시고 있는데 해마다 봄 가을에 제향을 지내고 있다.
여섯충신 가운데 백제의 성충과 흥수는 사치와 유흥에 빠져 정사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군사력 강화를 소홀히 하는 의자왕에게 외적의 침입을 경고하고, 곧은 소리로 상소를 올렸다가 투옥, 유배된 충신이며, 계백은 익히 알려진 대로 백제의 마지막 결사대 5천을 이끌고 황산벌 전투에서 김유신이 이끄는 5만여 신라군을 맞아 싸웠던 장군이다.
또한, 고려후기의 충신 석탄 이존오는 신돈의 악행을 간해 왕의 노여움을 사 좌천되었으나 그 뒤에도 직언을 멈추지 않았던 공민왕때 충신이고 정택뢰는 조선시대 인목대비 폐모에 반대한 이원익을 변호하다 유배된 충신이며, 지소 황일호는 청나라를 치고자 모의하다 청나라 병사에 피살된 기개있는 부여인이다.
의열사 앞에는 의열사비가 우뚝 서 있는데 의열사의 건립과정과 그곳에 모신 인물에 관한 내용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한편, 부여에서는 이곳 의열사를 통해 시대를 이어져 오는 충절의 의미를 더해 부여정신으로 승화 계승하고 있는 가운데 군은 충효열문화재를 소중히 관리해 잘 보존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