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색 오토바이 한 대가 해안도로의 좁은 돌담길을 지나 파란색 지붕의 대문 앞에서 멈춰 선다. 오토바이 소리에 방문을 열고 마당까지 나와 택배를 받아든 김봉례(73) 할머니가 김지훈(38) 집배원을 반갑게 맞이하며 "폭싹 속았수다"를 연발한다. '매우 수고했다'는 뜻의 제주도 사투리다. 할머니는 "우편물 배달뿐만 아니라 동네 허드렛일도 마다하지 않는 우도의 맏아들 같은 사람"이라며 김씨의 믿음직한 두 어깨를 두드려준다.
집배원 생활 6년차인 김씨는 제주가 품고 있는 작은 섬 우도의 모든 우편물을 홀로 책임진다. 우도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모르는 주민이 없을 정도이니 집배원으로서 제격이다. 우도는 700여 가구에 1600여명의 주민이 거주하는 작은 섬이지만 하루 평균 우편물량이 546건, 1년 14만 건이 넘을 정도로 일거리가 많은 지역이다. 수치로만 따져도 1년에 우도의 모든 가구를 200번씩 방문하는 셈이다. 그렇다 보니 마을 구석구석 정보가 훤하다. 그가 우도에서 베테랑 집배원으로 통하는 이유이다.
김씨의 하루는 아침 7시 반에 성산포항행 배를 타는 일부터 시작된다. 전날 접수받은 우편 및 택배 물량을 한시바삐 육지로 보내고, 육지로부터 들어오는 물건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김씨만의 노하우로 빠르게 우편물 분류를 마치고 우도 비양동의 해안가로 오토바이를 몬다. 바닷가에서 소라와 전복을 캐는 해녀를 향해 "할 망!(할머니의 제주도 방언)"을 큰 소리로 부른다. 이 시간엔 집이 아닌 이곳에 와야 우편물이 제대로 전해진다는 것을 아는 김씨만의 찾아가는 서비스이다. 편지를 건넨 후 잠시 바위에 걸터앉아 할머니의 말벗이 되어 드린다. 육지에 있는 아들의 안부를 물으니 할머니의 주름진 입가에 웃음꽃이 핀다.
우도는 한 해에 1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제주도의 또 다른 보물이다. 대표적인 관광지인 검멀래 해안, 우도봉, 올레길을 지날 때마다 관광객들이 김씨를 불러 우도의 맛집과 관광코스를 물어본다. 매번 똑같은 질문에 짜증도 날 만한데 관광객들의 질문에 하나하나 답변해 준다.
"집배인이기 이전에 이곳 주민이니 관광객들에게 친절해야죠. 주민과 관광객들 모두가 가족 같습니다." 남의 일도 내 일인 양 주민들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는 김씨. 그의 미소가 아름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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