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수의 하우스푸어가 불법 분양의 금융대출로 인해 생긴 것으로 취재 결과 밝혀졌다. 미분양 빌라나 아파트의 매매과정(일명 통매매)에서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받을 때 이름만 빌려주고(일명 자서) 수수료를 챙긴 허위 매입자가 수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아파트의 미분양 상태가 장기화되면 시행사는 경영압박으로 통매매를 통해 이윤을 버리고 현금화를 서두른다. 아파트 건설과정에서 발생한 밀린 채무를 처리하기 위해서다. 이때 흔히 아파트 분양가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거래가 이뤄진다.
이 과정에서 시행사, 부동산 브로커, 금융기관의 은밀한 밀당이 시작된다. 통매매 결과 얻어지는 수익률은 3∼5%이지만, 전체 거래 금액이 수십억에서 수백억 원에 달하다 보니 1%라도 더 챙기려는 이들의 밀당은 치열하다.
먼저 시행사와 브로커는 아파트(빌라)의 원분양가에 50∼55% 가격으로 매매 흥정을 한다. 물론 미분양 상태의 아파트(빌라)를 한 번에 매매하는 조건이다. 적절한 가격이 구두로 정해지면 브로커는 은행으로 달려간다. 또 한 번의 줄다리기가 시작된다. 이때 보통은 브로커와 은행 관계자 사이에 뒷돈 얘기가 오간다. 원분양가에 70∼75% 정도에서 대출금이 정해진다. 여기서 발휘되는 브로커의 금융 인맥이 통매매의 수익률을 크게 좌우한다.
은행 대출이 결정되면 이제 본격적인 행동에 들어간다. 시행사와 브로커 사이에 서류계약이 맺어진다. 당연히 불법계약이다. 실제는 반값 매매이지만, 서류상에는 정상 가격으로 기록된다.
계약이 완료되면 브로커는 서류를 싸들고 은행으로 달려가 미리 약속된 대출을 받는다. 분양가에 50%에 사서 70%의 대출을 받으면 20%에 차익이 발생한다. 취득세와 기타 경비 그리고 그동안 들어갔던 비용을 제하면 15% 정도의 수익을 챙길 수 있다. 분양가 3억 아파트의 경우 100채를 거래하면 수익금은 45억(3억×100채×15%)이다. 약간의 계약금으로 큰 수익을 손쉽게 챙길 수 있다.
그러나 브로커 한 사람이 아파트 100채를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때 하우스푸어 지원자가 필요하다.
브로커는 시행사와 계약이 완료되면 서류상 매입자, 즉 은행 대출을 받을 때 이름만 빌려주는 일명 대출 자서자를 모집한다. 부동산관련 인터넷 사이트에서 “아파트(빌라) 자서(차주)할 분”이라는 구인 광고 문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만약 100채를 거래한다면 100명의 자서자가 필요하다. 이들은 브로커에게 대출서류를 제출하고 며칠 후 은행에서 대출신청서에 도장만 찍는다. 그리고 대출이 완료되면 브로커는 이들에게 최대 10% 정도의 수수료를 지급한다.
이렇게 전체 작업을 성공리에 마치면 브로커는 최종적으로 5%(15억) 정도를 벌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자서를 한 사람들은 수수료를 받은 대신 아파트 분양가에 70%에 해당하는 금액의 대출금을 떠안게 된다. 아파트 분양가가 3억이라면 3천만 원의 수수료를 받고 2억 1천만 원의 은행 빚을 갚아야 한다.
브로커는 예정된 대출사고를 잠시 은폐하고 대출 편의를 봐준 은행에 피해를 줄이기 위해 1년 치 이자는 선납을 하게 된다. 따라서 1년 후에는 이자까지 고스란히 자서자들의 몫이 된다. 결국, 이들은 하우스푸어로 전락하게 된다.
최근 한 아파트 건설회사가 회사 직원들에게 이 같은 방법으로 미분양 아파트를 떠맡겼다가 18억의 은행 빚을 진 직원의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기도 했다
한 때 전문 기획부동산업자였던 이 모(남, 57세)씨는 이러한 불법 분양으로 생긴 하우스푸어가 전체 하우스푸어에 30%가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모씨는 자서자를 모집한다는 인터넷 광고를 올리면 문의 전화가 빗발친다고 말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자서 희망자 중 의사와 같은 전문직 종사자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병원 개원 시 고가의 의료장비를 할부로 구입하고 막상 개원했지만, 환자가 없어 병원 영업이 힘들어진 의사들이 급전이 필요해 지원한다고 한다. 물론 대다수는 생계를 유지하기 힘든 서민들이 주를 이룬다.
지난 22일 LG경제연구원은 2011년 기준으로 하우스푸어 가구를 32만 가구, 이들이 보유한 부실 채권은 38조 원에 달한다는 보고서를 냈다. 지난해 금융당국이 추산한 10만 가구의 세 배가량 되는 수치다.
이에 박근혜 차기 정부는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그러나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과 함께 지금도 계속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미분양 아파트의 불법 분양에 대해 철저한 단속이 필요하다. 또한, 이 과정에서 불법 대출을 눈감아준 은행들에도 무거운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
어려운 삶을 이어가는 서민들이 더이상 범죄자가 되고 하우스푸어로 전락하지 않도록 차기정부의 서민중심의 경제정책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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