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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으로 나온 아이들… 한뼘씩 자랐어요
  • 문기용01
  • 등록 2012-11-08 1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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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안 쌍정초 가을추수 한마당이 열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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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1일 천안 쌍정초등학교에서는 ‘가을 추수 한마당’ 잔치가 열렸다.


참새가 사라진 도시 인간 참새 떼의 소리가 들리다
 
10월의 마지막 날 아침. 천안 쌍용2동 쌍정초등학교 주변엔 가수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 아니라 발랄한 동요가 온 동네 아침을 깨웠다. 방앗간 참새소리가 이만치 시끄러울까 싶을 정도의 재잘거림이 가득한 운동장. 가을 운동회날도 아닌데 무슨 일인가 싶어서 내다보았을 주민도 많았을 것이다.
 
이날 쌍정초등학교에서는 ‘가을 추수 한마당’ 잔치가 열렸다. 충남도 3농혁신 사업의 일환(일명 도시학교친환경농업실천지원사업) 으로 천안시 7개 초등학교가 진행한 텃논 가꾸기 사업의 결실을 맺는 날이기도 했다. 필자의 딸아이가 쌍정초 4학년이다.
 
‘한 뼘 농장’ 이라는 이름을 가진 쌍정초 논밭은 작년보다 훨씬 더 많은 40여가지의 작물을 심었다고 한다. 개중에는 어른들도 잘 보지 못한 목화나 아주까리 같은 작물들도 있었다. 아이들에게 여러 작물을 보여주고 우리 농업의 소중함을 알려주기 위해 직접 종자를 구하러 교장선생님이 발로 뛰셨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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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뼘 농장.


 
오 마이 가지! …딸아이가 가지타령을 하는 이유
 
딸아이가 3학년이었던 지난해는 ‘가지’를 기르는 반이었다. 담임선생님께서 지금의 이 사업을 주도하고 계시는 담당 교사이기도 했는데 가지가 열릴 때마다 1번부터 하나씩 나눠 주었다. 그런데 하필 성씨가 ‘허’씨인 딸아이는 30번도 훌쩍 넘기는 맨 마지막 번호라 결국 가지를 받지 못했다. 아직까지도 가지를 받지 못해 억울해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 한 것은 딸아이는 가지나물 반찬엔 젓가락도 대지 않는다는 사실. 그래도 자기가 길렀기 때문에 꼭 갖고 싶었던지 아직까지도 가지 타령을 하고 있다.
 
참외 따던 날, 가지 반을 걱정하다.
 
4학년으로 올라오면서 딸아이는 ‘참외반’이 되었다. 거름을 어찌나 실하게 줬는지 주렁주렁 열리더니 제법 먹을 만하게 익던 날 반에서 화채를 만들어 먹기로 했단다. 알록달록 화채 그릇이랑 사이다 한 병 사가지고 신나게 가더니 정말 정말 맛있었다고 자랑을 한다.
 
“엄마, 참외가 원래 그렇게 아삭 한 게 아닌가봐. 약간 무른데도 참 달아.”
 
평소 과일이 약간만 퍼석해도 먹지 않던 ‘까탈대마녀’가 이런 말을 하다니… 역시 경험의 힘이란 참 크다. 팔리기 위해 내놓는 참외는 아삭하다 못해 사실 좀 덜 익은 맛인데 충분히 익혀서 따먹으니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었겠지. 다른 반 친구들이 자기네 반 화채 만들어 먹는 것을 너무 부러워했다면서 딸아이가 또 가지타령을 한다.
 
“엄마, 옆 반은 가지 반인데 너무 불쌍해. 이런 것도 못 해먹고. 하하하하~~”
“정아, 괜찮아. 청양고추반도 있잖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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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가 크는 풍경.


 
쓰고이~ 쓰고이~ 다니구치 교수님의 눈이 휘둥그레
 
지난 9월에 충청남도에서 로컬푸드 컨퍼런스가 열렸다. 발표자로 참석한 일본 다니구치 요시미츠 아키다대학 교수가 우리 집에 하루 머물렀다. 아파트촌에 특별한 것은 없고 쌍정초등학교 한 뼘 농장으로 안내했더니 카메라 셔터를 연방 누르면서 “쓰고이~ 쓰고이~(대단해 대단해)”를 연발했다. 식문화 교육이라면 일본이 훨씬 앞서지만 도심형 학교에서 농업교육과 연결시킨 훌륭한 아이디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모내기에서 추수까지 함께했더니
 
지난 6월 (사)천안시 친환경생산자연합회의 도움으로 아이들은 비록 작은 플라스틱 함지박이긴 해도 모내기를 했다. 한 반에 논 한 뼘 밭 한 뼘씩 배정 받아 열심히 가꾸었다. 한 뼘 농장 골든벨까지 열려서 딸아이는 열심히 작물 이름을 외우기도 했다. 여름 방학때 빈 교정을 꿋꿋하게 지켜낸 농작물들은 여기저기 봇물 터지듯 열매를 맺고 있었고 개학 전에 찾아갈 일이 없던 학교에 종종 들러 열매를 구경하는 재미에도 푹 빠졌었다. 어느덧 가을이 되어 허수아비를 하나씩 만들어 세우고 주민들도 영글어 가는 농작물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아파트로 둘러싸인 이런 동네에서 느낄 수 있는 계절감이라고 해봐야 아파트 조경시설 뿐이었는데 조금은 더 많이 보고 배웠을 것이고 말 그대로 아이들도 작물들도 ‘한 뼘’은 자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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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농산물 장터도 열리고.


 
운동장이 마당으로 훌륭하게 변신하다
 
대망의 10월 31일. 학부모 자원봉사자 100여명과 인근 주민들까지 참여해서 왁자지껄한 잔치가 벌어졌다. 벼 베기, 타작, 도정까지, 한 그릇의 밥으로 오는 과정을 짧게나마 경험했다. 무엇보다 잔칫날에 먹을 것이 빠지면 안되는 법. 흑돼지 수육, 떡볶이, 떡메쳐서 인절미까지 먹었다. 또 뻥뻥 소리를 내는 뻥튀기 기계에서는 튀밥이 튀어 나와 아이들을 더더욱 재미있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15개의 부스가 마련되어 지푸라기로 새끼도 꼬아 보고 달걀 꾸러미도 만들기, 쌀겨 비누 만들기 등 다채로운 행사가 열렸다.
 
무엇보다 그 어떤 ‘상 행위’도 용납하지 않는 학교 운동장에 친환경농산물 직거래 장터도 운영되어 ‘마트가기’가 아니라 ‘장보기’가 무엇인지를 잠깐이나마 보여준 좋은 기회였다. 그저 먼지 날리는 저녁엔 주민들이 운동을 하는 그런 건조한 운동장이 아니라 ‘마당’이 될 수 있던 참 좋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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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꾸러미 만들기 체험도 하고.


 
이 사업에 거는 기대와 바라는 점
 
내년에는 둘째 아이도 이 학교에 입학한다. 잘 하면 한 녀석은 채소반 한 녀석은 과일반이 될지도 모른다. 둘이나 보내니 좀 더 풍성한 경험이 쌓이지 않겠는가.
 
유치원 때 툭하면 다니던 ‘수확체험’. 어떻게 심지도 않은 고구마를 캐오기만 하고, 풀 한번 뽑지 않았는데 감자를 덜컥 캐오는지 영 맘에 들지 않던 ‘체험교육’. 비록 한계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한 뼘 농장’을 통해 아이는 ‘경험’을 한 셈이다. 적어도 농작물이란 것은, 심고 가꾸어야만 이렇게 가을에 수확할 수 있다는 진리를 엷게나마 겪지 않았을까.
 
딸아이는 오늘 ‘방과 후 교실’에서 수확한 목화솜으로 실을 뽑는 실험을 하고 왔다고 한다. 그리고 얻어온 목화솜과 목화씨앗(문익점 할아버지가 가져온 씨앗이 이렇게 생겼구나!)을 보여주는데 엄마인 나도 몰랐던 사실이었다.
 
“엄마, 화학솜은 태우니까 검은 연기나면서 석유냄새 나고, 이 목화솜 태우는데 맛있는 고구마 냄새가 났어.”
 
11살 아이가 엄마보다 아는 것이 몇 가지는 더 생겼고 나도 아이를 통해 배웠다. 참 고맙고 부끄러운 일이다.

이제 이 활동이 3년 차에 접어들게 되는데 좀 더 욕심을 부려보았으면 좋겠다. 충남도에서도 성의있는 지원을 약속해 주고 학교는 학교대로 농작물 기르기 교육에서 미각·식생활 교육까지 연결·확장시킨다면 어떨까 한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먹거리의 소중함과 그 근간인 농업·농촌·농민의 존귀함을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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