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자뿐인 집안′서 모친에 바칠 논문 쓰려 절도
파킨슨씨 병 환자인 어머니와 함께 사는 가난한 50세 아들이 ′마지막 효도′로 신학석사 논문을 쓰겠다며 논문에 필요한 윤리학 서적 등을 훔쳤다가 법원에서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
노모(50.무직.경기도 고양시 화정동)씨는 과거에 S대 신학대학원을 수료했지만 참고문헌이 없어 논문을 못썼고, 반월공단과 아파트 공사장 등에서 막노동을 했다.
폐결핵을 오래 앓았고 행려병자가 돼 서울시립 결핵병원이나 요셉병원 등에서 치료를 받거나 직접 주사를 놓기도 했다.
한때 천주교 요양원과 천주교 빈민구제단체에서 일했지만 병으로 그만뒀다.
파킨슨씨 병을 앓는 어머니(83)는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고 자주 혼수상태에 빠진다. 나병 장애인인 형(58.무직)과 어머니 앞으로 매달 나오는 생계보조비 40만원으로 관리비, 전기세, 약값을 내고 나머지로 끼니를 잇고 있다.
예전에는 척추 장애인인 세살위의 누나가 파출부 일을 했지만 지금은 세상에 없다. 초등학교 4학년 조카(10)는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노씨는 지난 3월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와 영풍문고, 강남구 서울문고를 돌며 ′막스 쉘러의 철학의 이해′ ′한문의 이해′ ′윤리학과 메타윤리학′ 등 책 34권 38만2천260원 어치를 훔치다가 붙잡혔다.
검찰에서 벌금 100만원에 약식기소됐지만 벌금을 낼 돈이 없어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노씨는 "적막과 고독이 죽음같이 무서워 책이라도 보려했다. 병자들뿐인 집안에 신문도, 컴퓨터도 없이 멍하게 벽만 쳐다보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 학위라도 받으면 비참함뿐인 어머니께 마지막 효도가 될까 싶었다"고 말했다.
노씨는 "어머니의 비참한 생애를 욕되게 하고 싶지 않았는데 죄인이 돼 죽고만 싶다. 조카가 너무 불쌍하다"고도 말했다.
서울지법 형사12단독 천대엽 판사는 지난 29일 "대형 매장에서 절도를 저지르면 쉽게 잡힐 수 있는데도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아 본인 말대로 당시 제대로 판단을 못했던 것 같고 특별히 돈이 되지도 않는 철학책 등으로 이득을 얻기보다 현실을 벗어나려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다"며 가정형편 등을 감안, 벌금 50만원에 대한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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