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시 기흥구에 5년 전 전셋집을 얻었던 안정혁 씨(가명). 그는 3개월 전 자신이 세 살던 집이 경매에 넘어가 하루아침에 거리에 나앉는 신세가 됐다. 그가 세를 얻던 당시 전세금은 9000만원 수준. 해당 아파트에는 세를 얻을 당시 주인이 대출로 낸 은행근저당이 3억원 설정돼 있었지만 집값이 5억원에 달해 전세금을 떼일 염려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최근 세를 살던 아파트 시세가 3억원 초반대까지 떨어졌다. 이 기간에 안씨는 두 번에 걸쳐 집주인에게 전세금을 총 4000만원 올려줬다. 그러나 집주인은 매달 수백만 원씩 돌아오는 대출 원리금 부담을 견디다 못해 결국 집을 경매에 넘겼다.
이 집은 3억원에 낙찰됐고 이 돈은 몽땅 은행으로 들어갔다. 안씨는 "졸지에 가족이 거리에 나앉게 돼 주인에게 밤낮으로 항의와 애원전화를 했지만 집주인도 '우리도 거지 신세다'고 푸념하며 전화를 끊어버렸다"고 말했다.
안씨는 "임대차보호법에서 전세금을 보호해 준다기에 알아봤지만 우리 집은 전세보증금 액수가 커서 대상이 안된다는 얘기만 들었다"고 하소연했다.
설사 법적으로 소액임차보증금 보호대상에 포함된다 해도 최우선 변제금액이 지역별로 1400만~2500만원에 불과해 별 실효성이 없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 모씨는 작년 9월 중랑구 묵동에 있는 신대대림아파트 126㎡에 월세를 얻었다. 월세보증금은 3400만원이었다.
최근 김씨는 살던 집이 경매에 들어가 청산을 하면서 법에서 보장하는 우선변제금 한도인 2500만원만 돌려받았다. 900만원은 떼인 것이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한강 이남 11개구 아파트 매매가격 대비 전세금 비율은 9년2개월 만에 다시 50%를 넘어섰다.
그나마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적용받아 집을 구입한 경우, 집값에서 잡힌 대출비중이 높지 않지만 DTI 적용을 받지 않았던 주택은 주택담보인정비율(LTV) 한도인 40~50%까지 집값이 은행근저당에 묶인 경우도 수두룩하다.
이런 주택에 전세로 들어간 후 집값이 크게 하락하면 자칫 보증금마저 떼일 수 있는 것이다.
하재윤 부동산써브 연구원은 "보증금을 지키기 위해선 예전보다 은행대출 근저당이 집값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더 꼼꼼히 살펴보고 살고 있는 집값이 급락하는 경우에도 주의를 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현재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서울의 경우 7500만원까지 보증금 보호대상이며 경매시 세입자에게 최우선적으로 돌려주는 최우선변제금액은 2500만원이다.
수도권 과밀억제권역(서울 제외)의 경우 6500만원에 2200만원이다. 인천을 제외한 광역시는 5500만원에 1900만원, 수도권 과밀억제권역이 아닌 인천, 안산, 용인, 김포, 광주의 경우 5500만원에 1900만원이다.
서울과 수도권에서 월세를 제외하고 7500만원에서 구할 수 있는 전셋집은 찾아보기 힘든 게 사실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임대차보호법은 무주택서민층을 보호대상으로 삼기 때문에 보호하는 계층이 얇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치솟은 임대보증금을 임대차보호법이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이 규정하는 보증금은 2010년 7월 26일 한 차례 확대 개정된 바 있다. 기존에는 서울과 수도권이 보증금 범위는 6000만원, 최우선 변제금은 2000만원 수준이었는데 이때 보증금 범위를 약 1500만원 정도 상향시킨 뒤 지난 2년간 변동이 없었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2010년 7월 대비 2012년 현재 전국의 아파트 전세금 상승률은 24.1%, 서울은 18.1%, 경기권은 22.26%다. 이상한 주거복지연대 이사장(한성대 경제학과 교수)은 "현재의 임대차보호법 보호범위나 최우선변제액은 수도권에서 전세는커녕 월세 사는 세입자들의 보증금을 커버하기도 벅찬 수준"이라며 "2년간 전세금 상승이 전혀 반영되지 못해 법개정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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