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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 너그러운 문화, 범죄 키우는 한국] 만취 의사, 화장실 간 간호사 쫓아와선… '충격'
  • jihee01
  • 등록 2012-06-18 10: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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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해자 79%가 직장상사… 하루아침에 일자리 잃고 형사처벌에 손해배상까지

술에 관대한 우리 사회를 직접 대변하는 직장에서는 피해자는 물론 가해자도 인생을 망치는 성희롱·성추행 사건이 빈발(頻發)하고 있다. 올 1월 취업포털 '커리어'가 직장인 40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여성 직장인 10명 중 7명(72.6%)이 성희롱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성희롱을 당한 장소(복수응답)는 '회식자리(44.5%)' '개인적 술자리(15.9%)' '워크숍 등 사내행사(7.9%)' 등 70% 가까이가 술자리와 연관이 있었다. 성희롱 가해자의 78.7%는 직장 상사로 나타났다. 직장 내 성폭력이 '갑을(甲乙) 관계'에 술이 결합된 구조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2010년 한 대기업은 영업팀장 H씨를 해고했다. 술자리에서 성추행·성희롱을 하다가 적발된 것이다. H팀장은 계약직 직원 A(30)씨가 입사하기 하루 전에 미리 식당으로 불러내 술을 마시게 한 뒤 느닷없이 "입사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안아보자며 강제로 껴안았다. 거래처 회식자리에 불러서는 테이블 아래로 A씨의 손과 허벅지를 더듬기도 했다.
 
 또 다른 계약직 직원 B(26)씨도 H팀장의 '술버릇'에 당했다. 저녁 회식 후 노래방에서 강제로 블루스를 추며 상체가 닿도록 밀착했다. '1대1 면담'을 한다며 부른 회식자리에서는 "내가 사귀던 여자친구도 너처럼 가슴이 컸다" 등의 말을 하며 강제로 끌어안고 입을 귀에 갖다대기도 했다.

술에 취해 신입사원을 성추행했다 일자리를 잃은 것은 물론, 형사처벌을 받고 손해배상까지 하게 된 경우도 있다. 게임 제작업체 부서장 최모씨의 이야기다. 최씨는 회식 자리에서 신입사원 J씨가 술을 잘 마시지 못하자, "술을 마시지 않으면 대신 마셔준 직원과 키스를 시키겠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J씨의 몸을 더듬기도 했다.
 
 견디다 못한 J씨는 입사한 지 두 달 만에 사표를 냈다. 최씨는 회사로부터 면직(免職) 처분을 받고, 성폭력특별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았다. 분(憤)을 참지 못한 J씨는 최씨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고, 재판부는 "최씨는 J씨에게 3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최씨는 술에 취해 '객기(客氣)'로 저지른 행동이라 여겼지만, 결국 그 객기로 지금껏 쌓아온 사회적 지위를 잃었을 뿐 아니라 전과자가 되고, 3000만원까지 배상해야 했던 것이다.

지난 1999년 개정된 남녀고용평등법은 직장 내 성희롱 행위를 금지하고, 성희롱 예방교육과 성희롱 행위자에 대한 징계 등을 규정하고 있다. '제도'는 이미 마련돼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성희롱을 당한 경험이 있다는 직장인의 78%가 '그냥 참고 넘겼다'고 했다. 술자리에서 일어나는 성희롱·성추행을 가볍게 보는 문화 때문이다. 심지어 성폭력 피해자는 직장을 떠나고, 가해자가 남는 경우도 있다.

지난 2010년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으로 인천의 한 대형병원에서 일하게 된 L(25)씨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한데 모인 회식 자리에서 성추행을 당했다. 의사 김모(39)씨가 다른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L씨의 엉덩이와 허벅지를 더듬은 것이다.
 
당황한 사회초년생 L씨가 화장실로 몸을 피했지만, 김씨는 화장실 앞까지 쫓아와 강제로 입을 맞추고 "가슴 한 번 만져보자"는 말까지 했다. L씨는 주변 선배 간호사들에게 피해 사실을 알렸지만 "너도 당했냐. 그X이 원래 술만 먹으면 개가 된다", "병원에 성희롱 관련 규정이 없어서 문제삼아도 너만 피해본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혼자 괴로워하던 L씨는 결국 1년도 안 돼 일을 그만뒀지만, 의사 김씨는 계속 병원에서 진료를 하고 있다.

중앙대 사회학과 신광영 교수는 "술에 취해 저지른 성폭력 사건을 단순 실수로 여기지 않고, '한 개인의 파멸을 가져오는 치명적 사건'으로 인식하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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