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년만 에 바다로 나온 "연어"…시인 안도현 <연어 이야기>
안도현 시인의 성장 우화 <연어>의 결말에서 은빛연어와 눈맑은연어가 우여곡절 끝에 자신들이 태어난 모천에 이르러 알을 낳고 장엄한 최후를 맞는 것이 <연어>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연어> 초판이 나온 1996년 3월부터 따지자면 햇수로 15년. 안도현 시인이 드디어 <연어>의 속편인 <연어 이야기>(문학동네)를 내놓았다. 은빛연어와 눈맑은연어의 딸 ‘나’를 주인공 삼은 <연어 이야기>는 모천을 떠난 연어가 강을 지나 넓고 깊은 바다로 나가기까지의 과정을 그린다. 바다에서 출발해 강을 거쳐 모천으로 거슬러올랐던 <연어>의 행로와는 반대되는 움직임을 담은 것이다.
<연어>의 주인공이 수컷 은빛연어였던 데 반해 <연어 이야기>의 주인공 ‘나’는 암컷이다. 은빛연어에게 암컷 눈맑은연어가 있었던 것처럼 ‘나’에게는 수컷 연어 ‘너’가 있다. 남들보다 늦게 모천을 떠난 ‘나’가 폭포 아래에서 만난 ‘너’는 사람들의 손으로 수정되고 부화한 ‘학교’ 출신.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제비가 되고 싶다는 ‘너’와 함께 ‘나’는 바다로 가는 여정을 시작한다.
<연어>의 주인공 커플이 물수리의 공격과 폭포의 낙차 같은 위험을 헤치고 모천으로 회귀했던 것처럼, 숭어들의 검은 동굴 같은 입과 왜가리며 물총새 같은 천적들의 부리는 바다로 향하는 ‘나’와 ‘너’의 행로를 가로막는다.
<연어>와 마찬가지로 <연어 이야기> 역시 모험담인 것에 못지않게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다. 강물이 키워 준 ‘나’와 인간들이 키운 ‘너’는 여러모로 다른 존재들이다. “나는 혼자인 게 싫어 강을 따라 내려가려고 했고, 너는 혼자이고 싶어 강을 거슬러오르려고 했다.”
그러나 다르다는 것이 서로를 향하는 마음에 넘을 수 없는 벽을 세우지는 않는다. 사랑은 차이를 다스려서 조화를 빚어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너’에게 이렇게, 마음속으로 말한다. “너를 만난다는 것은 너의 배경까지 만나는 일이야. 너를 만난다는 것은 너의 상처와 슬픔까지 만나는 일이지. 너를 만난다는 것은 너의 현재만 만나는 일이 아니야. 네가 살아온 과거의 시간과 네가 살아갈 미래의 시간까지 만나는 일이지.”
<연어 이야기>에서 사랑은 일차적으로는 ‘나’와 ‘너’ 두 존재 사이에 벌어지는 사건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랑의 의미가 둘의 생물학적 결합에만 머무르지는 않는다. 연어들의 모천인 초록강이 ‘나’에게 해 준 말이자 하류로 떠나기 전 ‘너’가 ‘나’에게 되돌려 준 다음 말은 <연어 이야기>에서 주제곡처럼 여러 번 되풀이된다.
“물속에 사는 것들은 모두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이 되어 있단다. 그렇지 않다면 이쪽 마음이 저쪽 마음으로 어떻게 옮겨갈 수 있겠니? 그렇지 않다면 누군가를 어떻게 사랑하고 또 미워할 수 있겠니?”
처음 ‘나’와 만났을 때 제비처럼 자유롭게 하늘을 날고 싶어했던 ‘너’는 시간이 흐르고 경험이 쌓이면서 용기와 지혜로 연어 무리를 이끄는 존재가 된다. 그가 두려움을 무릅쓰고 남보다 앞서 바다로 나아가기로 결심하고서 ‘나’에게 하는 말은 그가 생각하는 자유의 개념이 한결 성숙하고 깊어졌음을 보여준다. “나 혼자 자유로운 것은 자유가 아니야. 우리는 혼자가 되면 언제 어느 곳에서든지 자유가 보장된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그것은 착각일 뿐이야. 그 누구도 혼자서는 자유로울 수 없어. 네가 자유로워야 내가 자유로운 거야. 마찬가지로 내가 자유로워야 너도 자유로운 거지.”
인연의 존재론과 세계관, 개인에 갇히지 않는 공동체 정신에 입각한 자유관은 <연어>와 <연어 이야기>를 이어 주는 ‘보이지 않는 끈’이라 할 수 있다. ‘어른을 위한 동화’ 장르를 선도한 <연어>는 지금까지 114쇄를 찍었고 모두 86만여부가 팔렸다. <연어>의 다음 세대를 다룬 <연어 이야기>가 앞 세대의 성가를 이어나갈지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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